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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edia Art Article · 2026.09.15

관객은 무엇을 할 수 있는가: 어포던스와 참여의 문턱

돈 노먼의 어포던스와 시그니파이어 구분으로 인터랙티브 작품의 첫 행동을 살핀다. 실제로 가능한 행동, 가능해 보이는 행동, 참여를 안내하는 단서가 어긋날 때 전시에서 무엇을 확인해야 하는지 제안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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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제로 열린 통로와 손이 닿을 듯한 빛의 단서가 어긋나는 추상 조형의 개념 이미지

표지 이미지는 글의 개념을 표현한 AI 생성 일러스트이며, 실제 작품이나 전시의 기록 사진이 아니다.

가상의 인터랙티브 전시를 떠올려 보자. 바닥에 빛나는 원이 있고 벽에는 커다란 영상이 흐른다. 관객이 원 안에 서서 손을 흔들지만 영상은 그대로다. 작동 구역을 잘못 찾았을 수도 있고, 카메라가 손을 감지하지 못했을 수도 있다. 애초에 그 원은 참여 위치가 아니라 영상의 일부였을지도 모른다. 관객이 가만히 서 있다는 장면만으로는 작품에 관심이 없는지, 무엇을 해야 할지 모르는지 구별하기 어렵다.

이때 필요한 것은 참여율을 높일 안내 문구부터 정하는 일이 아니다. 작품이 어떤 행동을 실제로 허용하는지와 관객이 무엇을 할 수 있다고 읽는지를 나누어 보는 일이다. 어포던스(affordance)는 이 차이를 살피게 해 준다. 버튼이 볼록하게 생겼다는 설명에서 멈추지 않고, 특정한 몸이 특정한 환경에서 할 수 있는 행동을 묻는 개념이다.

누를 수 있다는 것과 입력된다는 것

돈 노먼은 「Affordances and Design」에서 지각심리학자 J. J. 깁슨의 어포던스를 행위자와 세계 사이의 관계로 설명한다. 그 관계가 제공하는 행동 가능성은 반드시 눈에 보이거나 이미 알려져 있을 필요가 없으며, 바람직한 행동에만 한정되지도 않는다.[2] 여기서는 깁슨의 원전을 직접 해설하기보다, 노먼이 디자인의 문제를 설명하며 제시한 구분을 따라간다.

노먼의 화면 예시는 특히 명료하다. 터치 입력을 감지하지 않는 화면도 손으로 만질 수는 있다. 다만 그 접촉이 컴퓨터의 반응으로 이어지지 않을 뿐이다. 터치 가능한 물리적 표면과 터치를 입력으로 처리하는 시스템은 같은 조건이 아니다.[2] 이 구분을 놓치면 센서가 있다는 사실과 관객의 행동이 작품을 바꾼다는 주장을 쉽게 섞게 된다.

전시장에서도 행동을 구체적으로 적을 필요가 있다. 앞의 가상 장면에서 관객은 원 안에 설 수 있고 손을 들 수 있다. 그러나 손의 위치를 바꾸어 영상의 방향을 조절할 수 있는지는 별도로 확인해야 한다. 카메라의 감지 범위와 프로그램의 입력 조건이 맞아야 하며, 결과가 돌아오는 시간도 관객이 자신의 행동과 연결해 볼 수 있어야 한다. 물리적 움직임이 가능하다는 판단을 시스템 조작의 성공으로 확대해서는 안 된다.

어포던스를 흔히 '행위유도성'이라고 옮기지만, 이 글에서는 행동을 유도하는 표시와 실제 행동 가능성을 구별한다. 작품 앞에 놓인 손잡이가 잡기 좋은 모양인지와 그것을 당겨 어떤 상태를 바꿀 수 있는지는 다른 질문이다. 반대로 행동 가능성이 마련되어 있어도 관객이 그것을 발견하지 못할 수 있다. 설계자가 아는 사용법이 곧 관객에게 열려 있는 사용법은 아니다.

빛나는 원은 행동의 단서다

노먼은 자신이 디자인에 도입한 용법을 '지각된 어포던스'로 명확히 했어야 한다고 돌아본다. 실제로 가능한 행동과 사용자가 가능하다고 지각하는 행동이 다를 수 있기 때문이다.[2] 이어 「Signifiers, not affordances」에서는 지각할 수 있는 단서를 시그니파이어(signifier)라고 부른다. 단서는 디자이너가 의도적으로 배치한 것일 수도, 다른 사람의 행동이 우연히 남긴 흔적일 수도 있다.[1]

이 관점에서 바닥의 원은 그 위에 서라는 단서로 읽힐 수 있다. 옆 사람이 손을 흔들자 영상이 바뀌는 장면 역시 뒤따르는 관객에게 사용법을 알려 줄 수 있다. 안내문을 쓰지 않았다고 안내가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다른 관객의 자세나 직원이 서 있는 위치도 작품을 어떻게 대해야 하는지 해석하는 재료가 된다. 이는 노먼의 사회적 단서 논의를 전시장에 적용한 해석이다.

단서는 틀릴 수도 있다. 노먼은 기차 승강장에 사람이 있는지 없는지로 열차의 도착·출발을 추측하는 사례를 들면서, 같은 단서의 신뢰도가 역의 혼잡도와 운행 상황에 따라 달라진다고 설명한다.[1] 전시장에서도 누군가 오래 서 있는 위치가 실제 작동 구역이라고 단정할 수 없다. 관객은 그곳에서 영상을 잘 볼 수 있었을 뿐일지 모른다.

따라서 손 모양 그래픽을 더 크게 만드는 것으로 해결되는 문제와 센서의 입력 범위를 고쳐야 하는 문제를 나누어야 한다. 실제 조작은 가능한데 발견되지 않는다면 단서를 바꾸어 볼 수 있다. 가능해 보이는 조작이 작동하지 않는다면 단서를 강화할수록 잘못된 기대만 반복시킬 수 있다. 무엇이 가능한지 알리는 일과 무엇을 가능하게 만드는 일은 제작 과정에서 서로 다른 수정을 요구한다.

첫 행동을 관찰하는 작은 리허설

이 구분을 DEXA의 전시 제작에 적용한다면, 작품 전체를 두고 '직관적인가'라고 묻기보다 한 행동을 골라 리허설하는 편이 낫다. 다음은 필자가 제안하는 검토 방법이며 노먼이 제시한 전시 평가 절차는 아니다. 앞의 가상 설치라면 '표시된 구역에서 손을 움직여 영상의 방향을 바꾼다'를 검토 대상으로 고정할 수 있다.

먼저 제작자가 설명하지 않는 상태에서 관객이 어디로 가고 무엇을 시도하는지 관찰한다. 기대했던 행동과 다른 행동이 나왔다고 곧바로 관객의 이해 부족으로 기록하지 않는다. 어떤 단서가 그 선택을 이끌었는지 짧게 확인하고, 그 자리와 자세에서 입력이 실제로 처리되는지 따로 점검한다. 관객이 틀린 위치를 골랐는지, 작품이 약속한 위치에서 작동하지 않았는지에 따라 손댈 곳이 달라진다.

예를 들어 단서를 본 관객이 손을 들었는데 반응이 없다면, 원의 밝기부터 바꾸기 전에 장치가 그 움직임을 받았는지 확인한다. 반대로 장치는 작동하지만 아무도 손을 들지 않는다면, 작동 시연을 한 번 보여 준 뒤 첫 행동이 달라지는지 비교해 볼 수 있다. 한 번에 바닥 표시와 감지 범위, 반응 시간을 모두 바꾸면 어떤 변경으로 차이가 생겼는지 판단하기 어려워진다.

같은 점검도 몸과 환경이 달라지면 다시 필요하다. 서 있는 제작자가 손을 뻗어 조작했다는 사실은 앉은 관객도 같은 입력을 할 수 있다는 증거가 아니다. 팔을 높이 들기 어려운 관객에게 다른 입력을 제공할지, 작동 구역 밖에서 관람할 경로를 마련할지는 실제 전시 조건에서 결정해야 한다. 여기서의 관찰은 확인한 행동과 관객의 범위에 한정된다. 작은 리허설만으로 전시 전체의 접근성이 검증됐다고 말할 수는 없다.

낯설게 만드는 작품에도 경계는 필요하다

모든 작품이 사용법을 즉시 드러낼 필요는 없다. 노먼도 게임에서는 행동의 발견과 해석을 쉽게 만드는 원칙을 의도적으로 어길 수 있다고 언급한다.[2] 미디어아트 역시 더듬어 보기와 실패를 경험의 일부로 삼을 수 있다. 어포던스를 검토한다고 작품을 효율적인 서비스 화면으로 바꾸어야 하는 것은 아니다.

다만 필자는 의도된 낯섦과 작동하지 않는 약속을 구별해야 한다고 본다. 관객이 여러 행동을 시험하며 관계를 발견하도록 설계했다면 그 탐색 자체를 작품의 리듬으로 다룰 수 있다. 그러나 특정 위치에서만 입력되는 장치를 두고 어디서든 반응한다고 안내했다면, 그 어긋남을 관객의 창의적 해석으로만 설명하기는 어렵다. 작가의 의도와 실제 반응을 함께 확인해야 모호함이 어떤 역할을 하는지 판단할 수 있다.

참여를 시작하는 조건만큼 멈추는 조건도 검토 대상이다. 이것은 어포던스의 정의에서 자동으로 도출되는 규칙이 아니라, 이 글이 전시 설계에 덧붙이는 윤리적 판단이다. 목소리나 몸의 기록을 요구하는 작품이라면 무엇이 입력되는지 알리고, 참여하지 않는 관람이 가능한지도 살펴야 한다. 관객이 몸을 움직일 수 있다는 사실은 기록에 동의했다는 뜻이 아니다.

어포던스와 행동의 단서를 나누어 읽으면 관객의 무반응을 조금 다르게 해석할 수 있다. 흥미를 느끼지 못한 사람도 있겠지만, 행동의 시작점을 찾지 못했거나 자신에게 가능한 경로가 없었던 사람도 있을 수 있다. 전시가 열리기 전에 그 차이를 확인해 두면, 작품의 어느 부분을 설명하고 어느 조건을 고쳐야 하는지 구체적으로 논의할 수 있다.

Sources

[1] https://jnd.org/signifiers-not-affordances [2] https://jnd.org/affordances-and-desig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