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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edia Art Article · 2026.10.16

앨빈 루시어가 목소리로 드러낸 방의 소리

앨빈 루시어의 I am sitting in a room을 통해 재녹음이 말소리를 공간의 공명으로 바꾸는 과정과, 녹음 파일·공연·전시가 서로 다른 경험을 만드는 이유를 살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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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어 있는 방 안에서 가느다란 진동의 흔적이 벽과 천장을 따라 넓은 빛의 띠로 변하는 개념 일러스트

표지는 GPT Image 2로 생성한 개념 일러스트다. 실제 작품의 설치 모습이나 음향 측정 결과를 재현한 이미지가 아니다.

녹음된 목소리를 들을 때 우리는 대개 누가 무엇을 말했는지부터 알아듣는다. 방의 울림은 말 뒤에 붙은 배경처럼 느껴진다. 그런데 그 목소리를 같은 방에 계속 돌려보내면 어떻게 될까. 말의 뜻이 희미해지는 동안, 처음에는 지나쳤던 공간의 특성이 선명해질 수 있다.

앨빈 루시어의 《I am sitting in a room》(1969)은 말소리를 녹음하고, 그것을 방에서 재생하며 다시 녹음하는 과정을 반복한다. 미시간대학교 미술관은 이 반복을 통해 문장이 점차 알아듣기 어려워지고, 공간의 공명과 매체를 통과하는 소리의 성질이 드러난다고 설명한다. UMMA의 작품 소개

이 글은 그 과정을 기록의 실패가 아니라 듣는 대상의 변화로 읽는다. 처음에는 발화자의 말을 따라가던 귀가 나중에는 그 말을 바꾸는 조건에 주의를 기울인다. 목소리가 남았는지만 물으면 손실처럼 보이는 변화가, 무엇이 새롭게 들리는지 물으면 작품의 형식이 된다.

같은 파일을 반복해서 트는 것과는 다르다

이 작품을 이해하려면 반복되는 것이 무엇인지 구분해야 한다. 첫 녹음을 여러 번 재생하는 경우에는 매번 같은 기록으로 돌아간다. 루시어의 과정에서는 방에서 재생된 소리를 새로 녹음한 결과가 다음 재생의 출발점이 된다. 앞선 단계에서 생긴 변화가 다음 단계로 넘어가는 것이다.

뉴욕현대미술관의 해설은 재녹음이 거듭될수록 특정 주파수가 두드러지며, 그 변화가 방의 건축적 특성과 연결된다고 설명한다. 공간은 이미 만들어진 음악을 담는 용기를 넘어 소리를 만드는 조건으로 들어온다. MoMA의 소장 과정 해설

이 설명에서 따라오는 중요한 구분이 있다. 컴퓨터 안에서 오디오 파일을 복사하는 행위와, 스피커로 내보낸 소리를 공기 중에서 다시 받아들이는 행위는 같지 않다. 후자에서는 녹음과 재생 사이에 실제 장소를 통과하는 단계가 있다. 이 단계를 지우고 반복 횟수만 맞춘다면 작품에서 무엇이 변화를 만드는지 설명하기 어려워진다.

여기서 방이 스스로 작곡한다는 표현은 유용한 비유지만, 사람과 장비의 역할까지 사라졌다는 뜻으로 받아들일 필요는 없다. 어떤 목소리를 입력할지, 어디에 재생과 녹음의 자리를 둘지, 변화를 어떤 순서로 들려줄지는 여전히 구체적인 선택이다. 공간을 작품의 재료로 인정하는 일은 그 선택을 보이지 않게 만드는 일이 아니다.

따라서 이 작품의 반복은 동일함을 확인하는 절차보다 차이가 쌓이는 과정을 듣는 형식에 가깝다. 관객은 처음의 문장을 기억하면서 뒤의 소리를 듣는다. 마지막 소리만 따로 제시했을 때와 달리, 무엇이 있었고 무엇이 변했는지를 비교할 시간이 생긴다. 출발점의 평범한 말소리도 그 비교를 가능하게 하는 중요한 부분이다.

말이 흐려질 때 듣는 사람의 역할도 바뀐다

처음에는 단어를 알아듣는 일이 듣기의 중심에 놓인다. 문장이 흐려지면 그 방식만으로는 더 이상 소리를 따라가기 어렵다. 대신 어떤 울림이 길게 남는지, 앞선 단계와 무엇이 달라졌는지에 주의를 기울이게 된다. 이는 작품을 설명하는 하나의 관점이지, 모든 관객이 같은 순서로 지각한다는 실험 결과는 아니다.

루시어의 작업을 단순한 음향 시연으로만 다루기 어려운 이유도 여기에 있다. 물리적 변화가 있다는 사실과 그 변화를 경험하는 방식은 서로 연결되지만 서로 다른 질문을 던진다. 어떤 사람은 말의 흔적을 끝까지 찾고, 다른 사람은 일찍부터 울림의 질감에 귀를 기울일 수 있다. 작품을 읽는 일에는 변화가 일어나는 과정과 듣기의 관심이 이동하는 과정을 함께 살피는 일이 포함된다.

MIT는 2014년 《Seeing / Sounding / Sensing》 심포지엄에서 이 작품의 라이브 공연과 공명에 관한 토론을 함께 열었다. 행사 소개에는 청각의 한계, 소리의 주관적 경험, 과학과 예술에서 소음이 갖는 의미가 토론의 질문으로 제시되어 있다. MIT의 공연·토론 기록

이 구성을 오늘의 미디어아트에 연결해 보면, 현상을 보여 주는 것과 관객이 그 현상에 머물게 하는 것 사이의 거리가 보인다. 공명이 생긴다는 설명을 읽는 데에는 오래 걸리지 않는다. 그러나 앞선 소리를 기억하며 다음 소리의 차이를 듣는 경험에는 시간이 필요하다. 작품의 길이는 정보를 전달하는 데 걸리는 시간과 다른 방식으로 작동한다.

전시장에서도 이 차이는 중요하다. 입구의 설명문으로 과정을 모두 알려 줄 수는 있어도, 설명문이 관객을 대신해 듣지는 못한다. 반대로 아무 설명도 주지 않으면 관객이 변화의 출발점을 놓칠 수 있다. 무엇을 미리 알려 주고 무엇을 듣는 동안 발견하게 할지는, 공간과 장비만큼이나 제작자가 고민할 문제다.

한 번의 녹음과 다시 수행할 수 있는 작품

MoMA는 작가와 협의해 이 작품을 소장하면서, 미술관에서 루시어가 수행한 아카이브 녹음과 이후 다른 사람이 작품을 다시 수행할 수 있는 가능성을 함께 포함했다. 2014년 녹음에서는 제임스 페이가 기술을 도왔고, 두 대의 테이프 녹음기 대신 노트북을 사용했다. MoMA의 소장·녹음 기록

이 사례가 보여 주는 구분은 명료하다. 녹음 한 개는 특정한 때에 이루어진 수행을 남기고, 다시 수행하기 위한 지시는 다른 때의 실현을 가능하게 한다. 둘은 서로를 대신하지 않는다. 파일을 보존했다는 사실만으로 이후의 모든 공연 조건을 보존했다고 할 수 없고, 재공연이 가능하다는 사실만으로 이전 수행의 기록이 불필요해지는 것도 아니다.

노트북을 썼다는 사실 역시 장치가 무엇이든 결과가 같다는 증거는 아니다. 기술이 바뀐 사례를 읽을 때에는 무엇을 바꿨고 어떤 관계를 이어 갔는지 구별해야 한다. 이 글에서 주목하는 것은 특정 장비의 외형보다, 소리를 내보내고 공간을 거친 결과를 다시 받아 다음 단계로 넘기는 관계다. 실제 재공연의 판단은 작품의 지시와 구체적인 설치 조건을 함께 확인해야 한다.

또한 녹음이 만들어진 방과 그 녹음을 듣는 방을 구별할 필요가 있다. UMMA의 2016년 전시 안내는 작품의 녹음이 갤러리를 채우며 전시 공간의 음향 특성과 만난다고 설명한다. UMMA의 전시 기록

여기서 녹음에 새겨진 장소와 현재 듣고 있는 장소는 겹치지만 동일하지 않다. 녹음을 틀어 놓는 전시를 그 자리에서 재녹음 과정을 수행하는 공연과 혼동하면, 관객은 지금 무엇이 일어나고 있는지 다르게 이해하게 된다. 미디어아트의 설명에는 작품명뿐 아니라 지금 제시하는 것이 어떤 형태의 실현인지도 들어가야 한다.

전시장을 소리의 바깥에 두지 않기

국내의 작은 전시장이나 수업에서 이 작품을 소개한다고 가정해 보자. 먼저 정해야 할 것은 작가의 녹음을 들려줄 것인지, 재녹음의 원리를 별도의 교육 실험으로 살펴볼 것인지, 작품 자체를 다시 수행할 것인지다. 이 셋을 모두 같은 재현이라고 부르면 감상 자료, 실험, 작품의 경계가 흐려진다. 루시어의 이름을 붙이는 것만으로 서로 다른 활동의 차이가 없어지지는 않는다.

교육 실험이라면 원본 녹음과 중간 결과를 함께 남기는 방법을 제안할 수 있다. 같은 파일을 여러 번 틀었을 때와, 재생음을 다시 녹음해 다음 입력으로 삼았을 때를 비교하면 변화가 누적되는 지점을 설명하기 쉽다. 이 제안은 작가의 공식 공연 지시를 대체하는 매뉴얼이 아니라, 작품을 읽으며 도출한 학습 방식이다.

청취 환경을 기록하는 일도 도움이 된다. 어떤 소리가 들렸는지를 말할 때 그 소리를 어디에서 어떤 방식으로 들었는지 함께 남기는 것이다. 헤드폰 청취, 전시장 스피커 재생, 현장에서의 재녹음 수행을 구별하면 서로 다른 경험을 같은 기준으로 평가하는 일을 줄일 수 있다. 기술 사양을 길게 늘어놓기보다 관객이 만난 소리의 경로를 분명히 설명하는 편이 유용하다.

《I am sitting in a room》을 듣고 나면 전시장에 대한 질문도 달라질 수 있다. 작품을 어디에 놓을 것인가와 함께, 그 장소가 무엇을 들리게 만들 것인가를 묻게 된다. 방은 작품이 도착한 뒤에도 계속 소리에 관여한다. 루시어가 남긴 중요한 전환은 그 관여를 배경에 머물게 하지 않고, 듣기의 중심으로 가져온 데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