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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edia Art Article · 2026.10.10

앤서니 매콜의 빛은 왜 스크린 앞에서 멈추지 않는가

Anthony McCall's solid light works turn the interval between projector and wall into a space of bodily spectatorship. This essay examines duration, atmospheric conditions, and the limits of treating immersion as a visual effec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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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두운 공간에서 빛의 얇은 곡면과 열린 원호, 관객의 실루엣이 투사 공간의 깊이를 드러내는 개념 일러스트

표지는 GPT Image 2로 생성한 개념 일러스트다. 작가의 실제 작품이나 전시 현장을 재현한 기록 사진이 아니다.

벽에 흰 점 하나가 나타난다. 점은 지나간 자리에 선을 남기며 천천히 원을 그린다. 원 하나를 완성하는 데 걸리는 시간은 30분. 벽만 바라보면 단순한 애니메이션이지만, 프로젝터와 벽 사이로 시선을 옮기면 다른 일이 벌어진다. 공기 중에 드러난 빛이 차츰 속이 빈 원뿔의 표면을 만든다. 관객은 그 표면을 옆에서 보거나 안으로 들어갈 수 있다. 앤서니 매콜(Anthony McCall)의 《Line Describing a Cone》(1973)은 이렇게 영화가 도착하는 곳보다 빛이 지나가는 곳을 보게 한다.[1]

매콜은 테이트가 공개한 인터뷰에서 이미지에 등을 돌리고 프로젝터 쪽을 바라보는 관람을 제안한다. 언제나 따라야 하는 감상법을 정해 주려는 말은 아니다. 화면이 있는 쪽을 작품의 정면으로 받아들이는 습관을 잠시 멈추게 하는 제안이다. 그는 작품의 크기도 관객을 안에 포함할 수 있을 만큼 커야 한다고 설명한다.[1] 여기서 크기는 압도감을 만드는 수치 이전에 몸이 들어갈 자리의 조건이다.

이 작업을 오늘의 몰입형 전시와 나란히 놓으면 질문도 달라진다. 얼마나 넓은 벽을 영상으로 덮었는지가 아니라, 관객이 움직일 때 무엇을 새롭게 볼 수 있는가. 매콜의 빛은 볼거리를 공간에 더하는 데 그치지 않는다. 평소에는 영상 전달의 빈 구간으로 취급되던 투사 거리가 작품의 중심으로 올라온다.

원을 완성하는 시간과 몸이 고르는 시간

《Line Describing a Cone》은 16mm 필름으로 만들어진 30분 길이의 작품이다. 매콜의 설명에 따르면 벽 위의 점이 천천히 원을 그릴수록 공간에는 속이 빈 빛의 원뿔이 형성된다. 끝에 어떤 형태가 나올지 알아차리기 어렵지 않다. 그런데도 원이 닫히기를 기다리는 데에는 일종의 극적 긴장이 생긴다. 작가 역시 뜻밖의 반전이 없는데 사람들이 완성을 기다리게 되는 점을 인터뷰에서 짚는다.[1]

이 기다림은 줄거리를 따라가는 방식과 다르다. 형태의 끝을 이미 알면서도, 아직 완성되지 않은 상태에 시간을 내준다. 원호가 열려 있을 때와 원이 닫혔을 때는 벽에 남은 선만 달라지는 것이 아니다. 관객의 몸을 둘러싸는 빛의 경계도 달라진다. 변화가 느리기 때문에 시선을 옮기고, 이전의 모양을 기억하고, 다시 비교할 여지가 생긴다.

작품에는 정해진 진행 시간이 있지만 관객에게 단 하나의 관람 위치가 주어지지는 않는다. 벽의 원을 확인하는 자리, 빛의 표면을 비스듬히 보는 자리, 원뿔 안쪽에서 바깥을 보는 자리가 서로 다른 정보를 준다. 이때 관객의 이동을 곧바로 영상의 제어라고 부르면 부정확하다. 몸의 위치가 달라져도 필름에 기록된 원의 진행 자체가 관객의 명령을 받는 것은 아니다. 변하는 것은 몸과 투사된 형태의 관계다.

그래서 이 글에서는 매콜의 참여성을 입력 장치의 반응 속도보다 관람 위치를 선택할 수 있는 여지에서 읽는다. 센서가 몸을 감지하고 화면이 즉시 반응해야만 참여가 성립하는 것은 아니다. 작품이 정해 놓은 시간 안에서도 어디에 얼마나 머물지에 따라 경험이 갈릴 수 있다. 반대로 움직일 수 있다는 사실만으로 자유로운 관람이 보장되는 것도 아니다. 통로가 좁거나 다른 사람의 몸이 시야를 가리면 선택의 폭은 줄어든다. 이런 관람 조건까지 물어야 ‘관객 참여’를 구체적인 공간의 문제로 다룰 수 있다.

빛의 조각을 만드는 공기

‘솔리드 라이트(solid light)’라는 이름은 손에 잡힐 듯한 빛을 떠올리게 한다. 하지만 빛이 실제로 단단한 물질이 되는 것은 아니다. 테이트의 전시 가이드는 초기 상영 공간에 있던 먼지와 담배 연기가 투사된 빛을 입체적으로 보이게 했다고 설명한다. 뉴욕과 런던의 전위영화 공간에서 보이던 형상은 필름만으로 성립한 것이 아니었다.[2]

이 대목에서 공기는 배경이기를 그만둔다. 동일한 선을 같은 속도로 재생해도 빛이 지나가는 공간의 상태가 달라지면 관객이 보는 형상은 달라질 수 있다. 영화 파일이나 필름에 보존된 이미지는 작품의 중요한 부분이지만, 그 이미지를 눈앞의 부피로 드러내는 조건을 모두 담고 있지는 않다.

테이트는 매콜이 2003년 솔리드 라이트 연작으로 돌아온 일을 디지털 프로젝터와 헤이즈 장치의 등장에 연결한다. 얇은 안개를 만드는 장치가 담배 연기 없는 현대 전시 공간에서도 광선을 볼 수 있게 했다는 설명이다.[2] 여기서 기술의 변화는 단순히 낡은 장비를 더 선명한 장비로 바꾼 사건으로 읽히지 않는다. 초기 공간에서 우연히 얻었던 가시성을 다른 환경에서 다시 마련하는 문제로 읽힌다.

다만 이를 그대로 설치 매뉴얼로 삼아서는 안 된다. 기관이 특정 전시의 안개를 설명한 문구가 모든 장비와 공간의 안전성을 보증하지는 않는다. 실제 제작에서는 사용할 장치와 액체의 규격, 환기, 감지 설비, 관람객 안내를 해당 공간의 조건에 맞춰 확인해야 한다. 이것은 매콜이 제시한 공통 기술 사양이 아니라 이 사례에서 필자가 도출하는 제작상의 주의점이다. 작품을 가능하게 하는 대기가 동시에 관람의 제약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을 감상과 운영이 함께 다뤄야 한다.

디지털 전환 뒤에도 남는 드로잉

디지털 프로젝션으로 넘어간 뒤에도 매콜의 작업은 화면을 다채로운 이미지로 가득 채우는 방향만을 택하지 않았다. 테이트의 작품 표기는 《Doubling Back》(2003)을 30분 주기의 디지털 비디오 프로젝션으로, 《Face to Face IV》(2013)를 두 개의 디지털 비디오 프로젝션과 양면 투사 스크린을 사용하는 24분 주기의 작품으로 기록한다.[2] 여기서 중요한 것은 ‘필름 이후’라는 기술 분류보다, 선과 곡면이 접히고 서로 마주 보면서 관람의 자리를 어떻게 바꾸는가다.

같은 가이드는 솔리드 라이트 설치를 발전시키는 세밀한 드로잉도 소개한다. 《Line Describing a Cone》의 제작 구상을 담은 1973년 노트와, 《Doubling Back》의 형태를 약 100초 간격으로 나타낸 드로잉 자료가 함께 제시된다.[2] 공간 안에서 유연하게 움직이는 빛을 보고 즉흥적인 효과라고 생각하기 쉽지만, 이런 자료는 형태의 변화가 시간에 걸쳐 구성되어 있음을 보여 준다.

작가의 공식 작품 페이지 역시 《Doubling Back》, 《Face to Face》, 《Between You and I》 등을 서로 다른 설치 장소의 사진으로 기록한다.[3] 그 사진들은 작품의 존재와 설치 모습을 확인하는 자료이지만, 관객의 경험을 대신하지는 않는다. 카메라가 고른 위치에서는 선명한 곡면이 다른 자리에서도 같은 모양으로 보일 것이라고 보장할 수 없다. 정지된 한 장에 담긴 밀도만으로 작품 전체의 시간을 판단할 수도 없다.

작품을 소개할 때도 이 차이를 살펴야 한다. 인상적인 설치 사진을 첫 이미지로 고를 수는 있다. 그러나 그것만으로 작업을 설명하면 관객의 이동과 느린 변화가 만들어 내는 차이는 빠진다. 매콜을 이해하는 데 필요한 정보는 ‘얼마나 멋진 형태인가’에서 멈추지 않는다. 어느 방향으로 빛이 투사되는지, 무엇이 시간에 따라 바뀌는지, 몸이 어느 구간에 들어갈 수 있는지를 함께 보아야 한다. 사진이 잘 보여 주는 것과 현장에서만 확인할 수 있는 것을 구분하는 일도 비평의 일부다.

몰입을 평가할 때 비워 둘 자리

매콜의 작업에서 출발해 오늘의 영상 설치를 평가한다면, 먼저 프로젝터와 이미지 사이의 공간을 살펴볼 수 있다. 그 구간은 관객에게 닫혀 있는가, 지나가도 되는가. 사람이 들어섰을 때 작품은 방해받는가, 새로운 관람 위치가 생기는가. 이 질문의 답이 모든 작품에서 같을 필요는 없다. 정면에서 집중해서 보도록 설계한 영상에도 그 나름의 이유가 있다. 중요한 것은 관람 방식을 기술의 부산물로 방치하지 않는 것이다.

시간에 관해서도 비슷한 구분이 필요하다. 짧은 홍보 영상에 맞춰 작품의 변화를 빠르게 보여 주는 일과, 관객이 느린 변화를 기다릴 수 있도록 전시를 구성하는 일은 서로 다르다. 원 하나가 닫히는 데 30분을 쓰는 작품은 순간의 시각적 인상만으로는 충분히 설명되지 않는다. 머물 공간이 있는지, 늦게 들어온 사람이 변화를 알아챌 실마리가 있는지, 함께 있는 다른 사람 때문에 관람이 어떻게 달라지는지를 확인해야 한다. 이는 특정 전시의 운영 실태를 평가한 결론이 아니라, 매콜의 사례가 오늘의 제작자와 관람자에게 열어 주는 질문이다.

확장영화를 단지 화면의 수나 면적이 커진 역사로 읽으면 이런 변화는 놓치기 쉽다. 매콜의 사례에서 확장되는 것은 화면 밖의 공간과 그 안에 놓인 관객의 역할이다. 벽의 선은 여전히 남아 있고, 프로젝터는 여전히 이미지를 보낸다. 다만 그 사이에 있던 몸이 더 이상 상영 장치 밖의 구경꾼으로만 머물지 않는다.

다음에 빛으로 가득한 전시장에 들어간다면 가장 화려한 장면을 찾기 전에 잠깐 옆으로 움직여 볼 수 있겠다. 그 한 걸음이 보이는 것을 실제로 바꾸는가. 매콜의 느린 원이 남기는 기준은 거기에 있다. 공간을 이미지로 채우는 일과, 몸이 새로운 관계를 발견할 공간을 만드는 일은 같은 작업이 아니다.

출처

  1. Tate, 「Anthony McCall: Line Describing a Cone」 — 작가 인터뷰 전사. 16mm·30분 형식, 점에서 원으로의 진행, 속이 빈 빛의 원뿔, 프로젝터를 향한 관람 제안과 관객을 포함하는 크기를 확인했다.
  2. Tate, 「Anthony McCall: Solid Light」 전시 가이드 — 초기 공간의 먼지·연기, 2003년 복귀와 투사·헤이즈 기술, 전시 드로잉, 개별 작품의 매체와 재생 주기를 확인했다. 작품별 세부 사항은 가이드의 작품 표기를 기준으로 삼았다.
  3. Anthony McCall, 「Solid Light Works」 — 작가 공식 작품 페이지. 작품명과 연도, 여러 설치 장소의 사진·캡션을 확인했다. 관람·제작에 관한 평가와 제안은 위 자료를 바탕으로 한 필자의 해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