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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edia Art Article · 2026.07.27

이벤트 스코어, 작품을 실행하는 문장

플럭서스의 이벤트 스코어와 배포, 재실행을 따라 작품의 단위가 오브제에서 사건으로 이동한 과정을 살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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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럭서스의 이벤트 스코어와 재실행을 해석한 개념 이미지

1963년 출판된 An Anthology of Chance Operations에는 예술가와 작곡가의 스코어가 한데 묶였다. La Monte Young과 Jackson Mac Low가 편집했고 George Maciunas가 디자인했다. 완성된 오브제를 보여 주는 도록이라기보다 누군가 읽고 실행할 때 사건이 생기는 제안들의 묶음에 가까웠다.

이 출판물에서 Fluxus의 작동 방식이 보인다. 플럭서스는 한눈에 알아볼 수 있는 시각 양식을 남긴 운동이 아니었다. 짧은 지시문, 일상 행위, 우연, 유머, 저비용 재료, 공연, 출판과 우편이 서로 연결된 국제적 네트워크였다. 작품의 단위도 소유할 물건 하나에 머물지 않았다. 스코어를 쓰고, 다른 사람이 수행하고, 장소와 시간이 결과를 바꾸며, 기록과 재공연이 다시 작품의 경계를 묻는 구조가 만들어졌다.

물건보다 실행 가능성을 설계한 네트워크

Tate는 플럭서스를 실험음악에 뿌리를 둔 소규모 국제 네트워크이자 공유된 태도로 설명한다. George Maciunas의 조직 활동이 중요한 축이었지만, 폐쇄된 회원제나 단일 스타일이 운동 전체를 규정하지는 않았다. John Cage의 우연성 실험, Dada의 반예술, 시와 공연, 출판 문화가 겹쳤고 Nam June Paik, Yoko Ono, Dick Higgins, George Brecht, Benjamin Patterson을 비롯한 여러 참여자가 서로 다른 방향으로 움직였다.

이벤트 스코어는 그 관계를 압축한 형식이었다. 몇 줄짜리 문장이나 시간 조건, 사물 배치가 수행의 출발점을 제시한다. 스코어가 결과를 전부 정하지 않기 때문에 수행자의 몸과 판단, 공간의 규칙, 관객의 반응, 우연한 실패가 구체적인 사건을 만든다. 같은 문장을 다시 실행해도 동일한 장면이 나오지 않는 이유다.

저자성은 사라지지 않았다. 누가 스코어를 썼는지, 누가 출판물을 편집하고 디자인했는지, 누가 공연을 조직하고 수행했는지가 각각 다르다. Getty가 소개한 An Anthology of Chance Operations만 보아도 편집자와 디자이너, 수록 작가와 작곡가의 역할을 한 사람의 이름으로 합칠 수 없다. 플럭서스는 역할을 나눠 제작했고, 그만큼 책임 주체도 구체적으로 살펴야 한다.

배포 방식도 작품의 형식을 바꿨다. 박스, 소책자, 복수 제작물(multiples), 우편 예술(mail art)은 작업을 전시장 한곳에 묶어 두지 않았다. 저비용 제작과 이동 가능한 형식은 더 많은 재실행을 허용했지만, 나중에 에디션과 컬렉션, 미술관 보존 체계에 편입되면서 반상업적 태도와 시장 가치가 충돌하기도 했다. 이 모순까지 포함해야 플럭서스를 자유로운 참여 예술이라는 한 문장으로 납작하게 만들지 않을 수 있다.

이벤트 스코어와 코드, 프롬프트의 다른 실행 조건

오늘의 소프트웨어 예술을 보면 이벤트 스코어를 코드나 프롬프트의 선조처럼 읽고 싶어진다. 셋 모두 실행 이전의 표기가 결과의 가능성을 조직한다. 규칙을 바꾸면 결과도 달라지고, 같은 지시에서 여러 변형이 나올 수 있다는 점도 닮았다.

닮은 점만 좇으면 실행 조건의 차이가 사라진다. 이벤트 스코어는 자연어의 모호함, 수행자의 해석, 몸의 상태, 사회적 관습과 장소에 크게 의존한다. 코드는 기계가 읽을 수 있는 구문, 실행 환경, 의존성과 상태가 필요하다. 프롬프트는 모델의 학습 데이터와 추론 설정, 확률적 생성에 연결된다. 서로 다른 실행 주체와 실패 조건을 지운 채 모두를 "명령어"로 부르면 작품이 실제로 어떻게 작동하는지 놓치게 된다.

Dick Higgins가 설명한 인터미디어도 같은 주의를 요구한다. 플럭서스는 음악, 시, 퍼포먼스, 오브제 사이를 오간 역사적 네트워크이고, 인터미디어는 기존 매체 사이에서 새로운 형식이 생기는 조건을 설명하는 개념이다. 둘은 긴밀하게 겹치지만 동의어는 아니다. 매체를 섞거나 지시문을 사용했다는 사실만으로 작업이 플럭서스의 계보에 들어가는 것도 아니다.

생성형 AI 작업에도 같은 경계가 적용된다. 짧은 프롬프트가 다양한 이미지를 만든다고 해서 관객이나 모델이 공동 저자가 되지는 않는다. 누가 규칙을 정했고, 어떤 변형이 허용되며, 데이터와 결과에 대한 권한이 누구에게 있는지 따로 확인해야 한다. 스코어와 프롬프트의 닮은 모양보다 그 뒤의 역할과 권한을 보는 편이 정확하다.

다시 공연할 때 무엇이 작품으로 남는가

실행 가능한 작품은 보존 방식을 어렵게 만든다. 종이에 적힌 스코어만 남기면 충분한지, 원래 재료를 교체해도 되는지, 수행자가 달라졌을 때 같은 작품인지 결정해야 한다. 반복 가능성은 무제한 변형과 같은 뜻이 아니다.

Getty가 다룬 Robert Watts의 Flux Light Kit는 이 문제를 구체적으로 보여 준다. 1970년대에 제작된 이 작업에는 수명이 다해 가는 전구 일곱 개가 있었고, 테스트 중 하나가 고장 났다. 보존가 Rachel Rivenc와 큐레이터 Marcia Reed, 작가 유산 관리 주체는 원래 전구를 보호하면서 전시용 복제본을 만드는 방식을 택했다. 이들은 무엇을 원본으로 남기고 무엇을 전시에서 재현할지 협의했다.

이 사례를 모든 플럭서스 작품의 규칙으로 일반화할 수는 없다. 다만 재실행 전에 확인할 항목은 분명해진다. 고정해야 할 문구와 바꿀 수 있는 요소, 재료의 허용 범위, 수행자와 기관의 권한, 관객 안전, 기록 방식이 필요하다. 전시용 복제본이 있다면 원본과의 차이도 드러내야 한다. 재공연은 작품의 정체성을 현재 조건에서 다시 협상하는 일이다. 과거 장면의 완벽한 복제와는 다르다.

남는 판단

오늘의 미디어아트가 플럭서스에서 확인할 대목은 지시문의 짧음이나 기발함이 아니다. 그 지시가 누가 해석할 여지를 남기는지, 장소와 시간이 결과를 어떻게 바꾸는지, 관객이 정해진 효과를 발동하는 역할에 갇히지는 않는지, 변형 뒤에도 무엇이 작품으로 이어지는지를 봐야 한다.

버튼을 누르면 화면이 바뀌는 설치도 반응형 작품일 수 있다. 관객이 규칙을 탐색하거나 다른 결과를 만들 수 없고, 참여하지 않을 선택도 없다면 사건의 범위는 좁다. 간단한 스코어가 수행자와 관객, 장소의 관계를 실제로 다시 짜고 그 차이를 기록하게 한다면 작은 형식 안에서도 긴 시간이 열린다. 작품을 물건이 아니라 사건으로 본다는 말에는 변형의 자유와 책임을 함께 설계한다는 뜻이 들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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