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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edia Art Article · 2026.09.23

양혜규의 추상은 왜 출처를 숨긴 채 움직이는가

양혜규의 베네치안 블라인드 설치와 소리 나는 조각을 따라, 역사적 참조가 직접 설명되지 않은 채 빛·소리·이동의 구조로 작동하는 ‘배양된 추상’을 읽는다. 감각적 몰입이 출처를 지우는 장식이 되지 않으려면 전시와 기록에서 무엇을 함께 남겨야 하는지 살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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겹친 슬랫과 섬유성 타원, 구리빛 점들이 따뜻하고 차가운 두 군집 사이의 빈 통로를 만드는 추상 개념 이미지

표지 이미지는 이 글을 위해 AI로 생성한 개념 일러스트레이션이며, 양혜규의 실제 작품이나 전시를 촬영한 사진이 아니다.

전시장 안에서 블라인드는 벽도 창도 아닌 상태로 빛을 잘라 낸다. 관객이 옆으로 움직이면 투명하게 보이던 면이 갑자기 닫히고, 분리돼 있던 구조가 잠시 겹친다. 양혜규가 2000년대 중반부터 사용해 온 베네치안 블라인드는 이렇게 공간을 고정된 배경이 아니라 계속 달라지는 관계로 만든다. 로스앤젤레스 현대미술관(MOCA)은 2026년 전시 《Haegue Yang: Star-Crossed Rendezvous》에서 이 재료가 빛을 거르고 공간적 관계를 조직하며 관객의 지각과 이동에 관여한다고 설명한다.[1]

그런데 이 감각적 환경에는 곧바로 보이지 않는 출처가 있다. 같은 전시의 한쪽 작품은 솔 르윗의 열린 정육면체 구조에서 출발하고, 다른 쪽 작품은 작곡가 윤이상의 삶과 음악을 참조한다. 작품은 두 인물의 생애를 벽면 연표로 설명하지 않는다. 대신 참조를 구조와 빛, 소리의 관계 안에 오래 머물게 한다. MOCA가 소개한 작가의 표현을 빌리면 이는 ‘배양된 추상(incubated abstraction)’이다. 역사적 서사가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작품의 잠재 구조로 남아 과거와 현재 사이의 관계를 연다.[1]

이 글은 양혜규의 전체 작업을 망라하지 않는다. 베네치안 블라인드 설치, 방울과 인조 짚을 사용한 소리 나는 조각, 그리고 2024년부터 이어진 회고전 《Leap Year》의 설명을 함께 읽으며 한 가지 문제에 집중한다. 출처를 직접 재현하지 않는 추상은 어떻게 역사와 연결되는가. 그리고 관객의 감각을 우선하는 전시에서 그 연결을 어떻게 설명하고 기록해야 하는가.

블라인드는 이미지를 보여 주기보다 거리를 조절한다

《Haegue Yang: Star-Crossed Rendezvous》는 베네치안 블라인드로 만든 대형 설치 두 점을 마주 놓는다. 《Sol LeWitt Upside Down – K123456, Expanded 1078 Times, Doubled and Mirrored》(2015)는 솔 르윗의 정육면체 구조를 받아들이되, 선명한 골조 대신 블라인드가 겹치는 조밀한 면으로 바꾼다. MOCA는 이 층들이 투명과 불투명 사이를 오간다고 설명한다.[1]

맞은편의 《Star-Crossed Rendezvous after Yun》(2024)은 윤이상에게 바치는 작업이다. 움직이는 빛은 윤이상의 《Double Concerto》(1977)와 동기화되어 기하학적 구조를 바꿔 보이게 한다.[1] 여기서 음악은 설치에 분위기를 더하는 배경음으로만 남지 않는다. 빛의 변화와 관객이 공간을 읽는 시간이 음악의 진행과 관계를 맺는다. 다만 공개된 전시 설명만으로 조명 변화의 모든 항목이 악보의 특정 음과 일대일로 대응한다고 말할 수는 없다. 확인되는 것은 동기화된 구성과 윤이상에 대한 헌정이다.

두 작품은 약 10년의 시차를 두고 만들어졌고, MOCA는 이를 불완전한 전체의 두 반쪽처럼 배치하면서 비대칭과 이중화라는 작가의 반복 원리를 드러낸다고 설명한다.[1] 이 전시 구조는 비교를 강요하지만 두 작업을 같은 이야기로 합치지는 않는다. 하나는 르윗의 조형 문법을 뒤집고 늘리고 겹친다. 다른 하나는 윤이상의 음악과 정치적 생애를 잠재적인 뼈대로 삼는다. 관객이 먼저 만나는 것은 두 출처의 설명이 아니라 서로 다른 밀도와 색, 빛의 움직임이다.

블라인드는 스크린과 작동 방식이 다르다. 완성된 이미지를 정면에 띄우는 대신 보는 각도와 거리, 반대편의 빛을 함께 조절한다. 관객은 작품 바깥에서 이미지를 소비하기보다 그 사이를 지나며 투명도의 변화를 겪는다. 그렇다고 곧바로 ‘참여적’이라고 부르기는 어렵다. 관객의 이동이 지각을 바꾼다는 사실과 관객이 작품의 규칙이나 역사적 의미를 자유롭게 결정한다는 주장은 다르다.

배양된 추상은 출처를 지우는가

MOCA의 설명에서 ‘배양된 추상’은 특정 역사와 인물이 작품 속에서 주로 감춰진 채 잠재 구조로 기능하는 방식을 가리킨다.[1] 이 표현은 추상을 아무 의미나 붙일 수 있는 빈 화면으로 보는 태도와 거리가 있다. 배양에는 시간과 조건이 필요하다. 참조는 즉시 알아볼 수 있는 도상으로 복제되지 않지만 재료의 선택, 공간의 분할, 움직임의 순서에 영향을 준다.

관객은 먼저 몸으로 작품의 관계를 통과할 수 있다. 특정 인물의 얼굴이나 사건의 대표 이미지를 알아보지 못해도 빛이 차단되고 열리는 과정, 소리와 움직임의 간격, 한쪽과 다른 쪽의 불균형을 겪는다. 역사적 참조를 아는 관객은 그 감각적 구조를 다시 읽을 단서를 얻는다. 모르는 관객에게도 작품은 닫힌 암호로만 남지 않는다.

동시에 정보의 비대칭도 생긴다. 작품의 출처가 대부분 잠재해 있다면, 벽면 글과 도록, 오디오 가이드가 어떤 참조를 밝히는지에 따라 해석의 범위가 크게 달라진다. 추상을 보편적인 감각 언어라고만 설명할 경우 윤이상이라는 구체적 인물과 그의 음악은 분위기의 재료로 축소될 수 있다. 반대로 모든 형식을 출처의 해설로 환원하면 블라인드, 빛, 동선이 만들어 내는 실제 지각 경험이 사라진다.

전시는 출처와 감각 중 하나만 택할 필요가 없다. 작품 앞의 짧은 설명은 어떤 인물이나 작업이 참조되었는지 확인하게 하고, 더 긴 자료는 그 관계가 작가의 조형적 결정과 어떻게 이어지는지 보여 줄 수 있다. 다만 작가가 공개하지 않은 대응표를 큐레이터가 대신 만들어서는 곤란하다. 확인된 참조와 전시자가 제시하는 해석은 구분해야 한다.

방울과 인조 짚은 민속을 재현하지 않는다

국립현대미술관의 2020년 전시 《MMCA 현대차 시리즈 2020: 양혜규—O₂ & H₂O》는 양혜규가 일상적·산업적·유사 민속적 성격의 재료를 사용하며 서사와 추상, 가사성, 이주와 경계를 위계 없이 다뤄 왔다고 소개한다.[2] 전시에는 방울과 인조 짚을 사용한 《소리 나는 가물》과 《중간 유형》이 포함됐다. 미술관은 이 작업들이 공예의 수행성을 오늘의 사회와 연결하고, 생명체와 기계 또는 사물과 인간 사이에 있는 듯한 존재를 만든다고 설명한다.[2]

여기서 ‘유사 민속적’이라는 표현은 특정 공동체의 전통물을 그대로 복원했다는 뜻이 아니다. 인조 짚, 금속 방울, 바퀴 달린 구조처럼 출처와 사용법이 다른 요소가 결합한다. 익숙한 재료는 낯선 분류 안으로 들어간다. 관객이 구조물을 밀거나 작업이 움직일 때 방울이 울리는 작품에서는 형태만큼 활성화의 조건도 중요하다. 국립현대미술관은 2021년 2월 전시 중 9점의 소리 나는 조각을 정해진 시간에 약 15분간 시연했다고 기록한다.[2]

이 기록을 보면 보존과 재전시에 필요한 질문이 생긴다. 방울이 달려 있다는 사실만 기록하면 소리는 남지 않는다. 누가 어떤 경로와 속도로 움직였는지, 여러 조각이 함께 울렸는지, 관객은 어느 거리에서 들었는지를 구분해야 한다. 그렇다고 당시의 한 차례 안무를 모든 전시의 유일한 정답으로 간주할 수도 없다. 공개된 기록은 특정 전시의 활성화 사례이며, 작품의 완전한 설치 지침은 작가와 소장처의 별도 자료에서 확인해야 한다.

소리 나는 조각을 ‘전통과 현대의 융합’이라고만 부르는 것도 부족하다. 어떤 전통을 가리키는지, 실제 전승 물건을 인용하는지, 산업 재료가 그 인용을 어떻게 바꾸는지를 묻지 않으면 서로 다른 문화적 참조가 하나의 장식적 분위기로 뭉개진다. 양혜규의 작업이 친숙함과 이질감을 함께 만드는 이유는 재료가 하나의 출처로 곧장 돌아가지 않기 때문이다.

회고전은 작품을 네 개의 주제로만 정리하지 않는다

《Leap Year》는 2024년 런던 헤이워드 갤러리에서 시작해 로테르담을 거쳐 2025년 취리히 미그로스 현대미술관으로 이어진 순회 회고전이다. 미그로스 현대미술관은 이 전시가 30여 년의 작업을 조각, 설치, 영상, 콜라주에 걸쳐 살피며 움직임, 영성, 공동체, 가사성이라는 주제로 구성된다고 설명한다. 또한 정체성, 이주, 문화적 혼종성과 개인적·집단적 기억을 다룬다고 적는다.[3]

네 개의 주제는 작품을 분류하는 입구이지 각 작업을 한 칸에 고정하는 표가 아니다. 블라인드는 가정의 창에 쓰이는 물건이면서 산업적으로 생산된 공간 장치다. 방울은 움직임을 들리게 만들고, 조각의 표면은 공예와 민속을 떠올리게 하지만 어느 한 전통의 완전한 재현으로 멈추지 않는다. 하나의 작품 안에서 가사성과 이동, 공동체와 영성이 서로 겹칠 수 있다.

회고전의 제목인 윤년은 규칙과 예외의 관계를 떠올리게 한다. 그러나 제목만으로 모든 작품을 시간의 예외에 관한 알레고리로 묶는 것은 과도하다. 미그로스 현대미술관이 확인해 주는 것은 전시 제목, 기간, 순회 구조와 주제적 구성이다.[3] 개별 작품이 그 제목과 맺는 관계는 작품별 자료와 실제 배치를 더 살펴야 한다.

이런 회고전에서 작품의 연도와 재료 목록만큼 중요한 것은 활성화와 관람의 조건이다. 움직이는 조각은 정지 사진으로, 빛을 거르는 블라인드는 정면 사진으로, 음악과 동기화된 설치는 무음 영상으로 기록될 때 핵심 관계를 잃을 수 있다. 모든 감각을 완벽히 복제할 수는 없지만, 기록이 무엇을 담고 무엇을 생략했는지는 밝힐 수 있다.

감각적 전시를 설명하고 기록하는 법

양혜규의 작업을 바탕으로 미디어아트 전시에서 확인할 항목을 정리할 수 있다. 먼저 작품의 공개된 참조와 전시자의 해석을 분리한다. 윤이상, 솔 르윗, 특정 민속이나 공예 전통처럼 확인 가능한 출처는 출처대로 적고, 색이나 동선이 무엇을 상징한다는 해석은 그 성격을 밝혀야 한다.

다음으로 움직임과 소리를 물체의 부속 정보로 취급하지 않는다. 시작 상태, 활성화 주체, 이동 경로, 지속 시간, 반복 여부를 남겨야 한다. 관객이 만질 수 있는 작품인지 훈련된 퍼포머가 움직이는 작품인지에 따라 경험뿐 아니라 안전과 보존 조건도 달라진다. 이 항목은 양혜규가 제시한 보편적 매뉴얼이 아니라, 공개된 전시 사례에서 도출한 필자의 기록 기준이다.

사진의 한계도 기록해야 한다. 블라인드의 투명도는 보는 위치에 따라 달라지고, 방울의 울림은 이미지에 남지 않으며, 음악과 조명의 동기화는 한 장면으로 확인할 수 없다. 대표 사진을 고를 때 아름다운 정면만 남기기보다 서로 다른 위치와 시간에서 관계가 바뀌는 모습을 함께 남기는 편이 작품의 구조에 가깝다.

배양된 추상은 출처가 없다는 선언이 아니다. 출처가 즉시 읽히는 표지판 대신 재료와 감각의 구조 안에서 오래 작동하도록 두는 방식이다. 그래서 감상은 두 방향으로 움직여야 한다. 몸이 먼저 겪은 빛과 소리의 관계를 존중하면서, 그 관계를 떠받치는 역사적 이름과 맥락도 다시 확인해야 한다. 둘 중 하나를 지우면 추상은 장식이 되거나 해설의 삽화가 된다.

직접 읽은 자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