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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edia Art Article · 2026.09.09

도시는 걷는 동안 악보가 된다

힐데가르트 베스터캄프의 사운드워크와 대표작을 따라 듣기가 도시의 배경음을 작품과 비평의 재료로 바꾸는 과정을 살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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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안 산책로와 바다를 따라 소리의 파동처럼 이어지는 빛의 선을 형상화한 개념 이미지

AI로 생성한 개념 이미지이며, 실제 작품이나 사운드워크 현장의 기록사진이 아니다.

도시를 설명할 때 우리는 먼저 눈에 보이는 것을 말한다. 건물의 높이, 도로의 폭, 간판의 색, 사람의 밀도. 잠시 눈을 감으면 장소의 경계가 다르게 잡힌다. 가까운 발걸음과 먼 차량 소리 사이의 거리, 실외기와 파도 소리가 겹치는 높이, 안내 방송이 몸의 움직임을 바꾸는 순간이 도시의 또 다른 지도를 만든다.

힐데가르트 베스터캄프(Hildegard Westerkamp)는 이 지도를 듣기 위해 걷는다. 베스터캄프의 사운드워크는 특별한 소리를 수집하는 관광도, 조용한 자연으로 도피하는 산책도 아니다. 주변의 모든 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익숙함 속에 묻힌 음향 환경을 관계의 문제로 다시 듣는 실천이다. 베스터캄프는 1974년에 처음 발표하고 2001년에 고쳐 쓴 「Soundwalking」에서 사운드워크를 “주된 목적이 환경을 듣는 데 있는 모든 이동”으로 정의한다.[3]

이 정의는 작품이 놓이는 자리를 넓힌다. 전시장에 새 소리를 설치하지 않아도 걷는 경로와 멈춤, 주의의 방향이 달라지면 이미 있던 장소가 다른 구성으로 들린다. 작가는 소리를 만들면서 어떤 소리를 들을지 묻고, 관객은 완성된 음향을 받아들이는 대신 자기 몸으로 그 구성을 지나간다.

듣기는 배경을 전경으로 옮기는 기술이다

베스터캄프는 1946년 독일 오스나브뤼크에서 태어나 1968년 캐나다로 이주했다. 1970년대 초 브리티시컬럼비아대학교에서 음악을 공부한 뒤 사이먼 프레이저 대학교의 World Soundscape Project에 합류했다. 공식 약력은 이 경험과 밴쿠버 협동조합 라디오에서 진행한 주간 프로그램 《Soundwalking》(1978–1979)이 그의 사운드스케이프 작곡과 음향생태학 작업을 형성한 두 계기였다고 설명한다.[1]

World Soundscape Project는 R. 머리 셰이퍼가 1960년대 말과 1970년대 초 사이먼 프레이저 대학교에 세운 교육·연구 그룹이다. 초기에는 소음 공해에 관한 문제의식에서 출발했지만, 밴쿠버의 음향 환경을 조사하고 캐나다와 유럽의 소리를 녹음하면서 장소를 듣고 기록하는 방법을 넓혔다.[2] 베스터캄프는 이 프로젝트의 일원으로 출발해 1991년부터 1995년까지 《Soundscape Newsletter》를 편집했고, 1993년 World Forum for Acoustic Ecology의 설립에도 참여했다.[2]

이 계보에서 듣기는 감상의 마지막 단계가 아니다. 무엇이 소음으로 규정되고 무엇이 장소의 표지로 보존되는지 살피는 조사 방법에 가깝다. 같은 골목에서도 배달 오토바이의 가속음, 상점의 자동문 알림, 환풍기의 저음, 대화가 벽에 부딪혀 생기는 잔향은 서로 다른 시간표와 사용 규칙을 드러낸다. 소리는 공간에 덧붙는 분위기가 아니라 공간을 누가 언제 어떻게 쓸 수 있는지 알려 주는 흔적이다.

베스터캄프가 2024년 사이먼 프레이저 대학교 명예박사 수여식에서 소개한 초기 일화는 이 실천의 성격을 선명하게 보여 준다. 그는 1973년 대학교 안팎에서 첫 사운드워크를 설계했고, 당시 밴쿠버 지역의 소음 조례를 정비하던 공무원 대상 워크숍에서 환경의 소리를 직접 듣게 했다고 회고했다.[6] 법으로 관리할 ‘소음’을 수치와 문서로만 다루기 전에, 판단이 적용될 장소를 직접 듣게 한 셈이다. 사운드워크는 예술적 감수성과 공공의 판단을 분리하지 않는다.

걷기는 장소를 읽는 악보가 된다

「Soundwalking」에는 정답에 가까운 감상 목록 대신 계속 이어지는 질문이 등장한다. 몸이 내는 가장 작은 소리는 무엇인지, 가까운 소리 뒤로 무엇이 더 들리는지, 가장 멀고 조용한 소리는 무엇인지 묻는다. 이어서 흩어진 소리들을 하나의 환경적 구성으로 다시 듣고, 지금 들리는 사운드스케이프를 좋아하는지 판단하게 한다.[3] 청취자는 소리의 이름만 적는 데서 멈추지 않고 거리와 리듬, 지속 시간, 자신의 위치를 함께 살핀다.

사운드워크의 악보는 오선지에만 있지 않다. 어느 길로 들어가고 어디서 멈출지, 혼자 걸을지 함께 걸을지, 눈을 뜰지 감을지, 가까운 소리에서 먼 소리로 주의를 어떻게 옮길지가 수행 지시가 된다. 같은 경로를 걸어도 날씨와 시간, 공사 여부, 보행 속도, 청취자의 몸에 따라 결과는 달라진다. 작품의 반복은 동일한 소리를 재생하는 일이 아니라 동일한 질문을 다른 환경에 다시 놓는 일이다.

이때 관객의 역할도 달라진다. 전시장에서는 대개 작품이 시작되는 지점과 감상 거리가 미리 정해져 있다. 사운드워크에서는 관객이 경로를 선택하고 몸을 움직이며 작품의 시간에 직접 개입한다. 다만 참여한다고 해서 자동으로 자유로운 것은 아니다. 계단과 비포장길은 누군가를 배제할 수 있고, 헤드폰은 미세한 녹음을 들려주는 동시에 교통의 위험 신호를 가릴 수 있다. 공공장소의 대화와 노동 소리를 녹음한다면 동의와 재사용 범위도 따져야 한다. 좋은 사운드워크는 더 많이 듣게 만드는 데 그치지 않고 누가 안전하게 들을 수 있는지까지 설계해야 한다.

현실의 소리와 작곡된 소리는 서로를 밀어낸다

베스터캄프의 작업은 현장을 그대로 보존하는 기록과 스튜디오에서 만든 작곡 사이에 머문다. 《A Walk Through the City》(1981)는 노르베르트 뤼브자트의 시와 낭독, 밴쿠버 스키드로 지역에서 채집한 교통음·경적·브레이크·사이렌·공사음·사람의 목소리를 엮은 2채널 작품이다. 공식 작품 설명에 따르면 실제 소리와 스튜디오에서 변형한 소리를 함께 사용해 현실과 상상의 사운드스케이프 사이에 계속 흐르는 관계를 만들었다.[4]

여기서 도시는 얌전한 배경 녹음으로 남지 않는다. 시의 목소리는 주변 소리를 해설하기도 하고 그 소리에 밀려나기도 한다. 알아들을 수 있는 장소가 변형된 음향으로 넘어가고, 다시 현실의 목소리가 들어오면서 청취자는 자신이 기록을 듣는지 구성된 장면을 듣는지 거듭 판단한다. 현장음은 사실의 증거이면서 작곡 재료이고, 편집은 도시를 정리하는 동시에 그 안의 충돌을 드러낸다.

《Kits Beach Soundwalk》(1989)는 도시의 소음에서 미세한 해변의 소리로 초점을 옮긴다. 이 작품은 베스터캄프가 1970년대 말 라디오 프로그램에서 여러 장소를 음향적으로 탐색했던 아이디어를 작곡으로 확장한 9분 32초의 음성과 2채널 오디오 작업이다.[5] 겨울 아침의 키칠라노 해변에서 녹음한 잔잔한 물결과 따개비의 미세한 소리는 도시의 낮은 진동을 뒤에 둔 채 점차 확대된다. 공식 설명에 따르면 작품은 결국 도시를 뒤로하고 고주파의 작은 음향 세계와 내면의 공간으로 들어간다.[5]

마이크와 스튜디오는 이때 투명한 기록 장치가 아니다. 너무 작아 현장에서 놓치기 쉬운 소리를 앞으로 당기고, 도시의 규모와 따개비의 규모를 한 청취 안에 겹친다. 중요한 것은 자연음이 도시보다 순수하다는 선언이 아니다. 어떤 소리를 전경에 둘지 선택하는 순간 장소의 비율이 달라진다는 사실이다. 녹음은 현장을 복제하지 않고, 현장에서 맺었던 거리와 주의를 다시 작곡한다.

자동으로 분류되는 소리 앞에서 다시 걷기

오늘의 도시에서는 다양한 청각 인터페이스가 일상의 듣기에 개입한다. 내비게이션의 음성, 무인 기기의 확인음, 플랫폼 알림, 소음 제거 헤드폰, 자동 자막과 음성 인식은 듣기를 돕는 동시에 무엇을 중요한 신호로 취급할지 먼저 결정한다. 우리는 소리를 듣기 전에 기기가 붙인 이름과 우선순위를 받아들이기 쉽다.

생성형 오디오와 소리 분류 모델이 익숙해진 지금, 사운드워크는 기술을 쓰지 않는 순수한 감각 훈련으로 돌아가자는 제안이 아니다. 장치가 무엇을 확대하고 지우는지 현장에서 비교하는 방법이 될 수 있다. 같은 길을 맨귀와 헤드폰으로 번갈아 듣거나, 자동 분류가 붙인 이름과 직접 적은 묘사를 나란히 놓으면 모델이 놓친 거리감과 맥락이 드러난다. ‘자동차’, ‘새’, ‘사람 목소리’라는 분류만으로는 그 소리가 가까워지는지 멀어지는지, 경고인지 생활의 리듬인지, 누구에게 방해가 되는지 알 수 없다.

한국의 밀도 높은 도시에서는 이 차이가 더 또렷해진다. 지하철 환승 통로, 재래시장, 아파트 단지, 하천 산책로는 시각적으로 가까워도 전혀 다른 속도와 규칙으로 들린다. 사운드워크를 전시 리서치나 워크숍에 쓸 때는 아름다운 소리를 채집하는 것보다 시간대를 바꿔 다시 걷고, 들리지 않았던 노동과 기계의 지속음을 기록하며, 녹음이 사적 대화를 포획하지 않는지 확인하는 일이 먼저다. 장소를 잘 듣는다는 말은 조용한 소리를 많이 발견한다는 뜻이 아니라 그 소리들이 놓인 관계를 성급히 지우지 않는다는 뜻에 가깝다.

베스터캄프의 사운드워크는 도시를 하나의 완성된 음악으로 낭만화하지 않는다. 듣기 싫은 소리와 너무 큰 소리, 의미를 잃은 반복도 환경 구성의 일부로 받아들인 뒤 왜 그런 배치가 생겼는지 묻게 한다.[3] 걷는 동안 도시는 악보가 되지만, 그 악보에는 화음만 적혀 있지 않다. 어떤 소리가 배경으로 밀렸는지, 누구의 목소리가 소음으로 취급되는지, 내가 움직일 때 소리의 질서가 어떻게 달라지는지도 함께 기록된다.

사운드워크가 남기는 질문은 “무엇을 들었는가”보다 조금 길다. 어디에서, 어떤 몸으로, 어떤 장치를 거쳐 들었는가. 그 청취는 장소와 맺는 관계를 실제로 바꾸었는가. 그 질문을 품고 다시 걷는 순간, 익숙한 도시는 새 소리를 내기보다 우리가 지나치던 소리를 돌려준다.

Sources

[1] Biography of Hildegard Westerkamp

[2] The World Soundscape Project

[3] Soundwalking

[4] A Walk Through the City (1981)

[5] Kits Beach Soundwalk (1989)

[6] Speech by Honorary Doctorate Recipient Hildegard Westerkamp, Convocation SFU 20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