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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edia Art Article · 2026.09.29

규칙은 어떻게 관객을 설득하는가

절차적 수사의 관점에서 게임과 인터랙티브 미디어아트의 규칙, 선택지, 피드백이 어떻게 세계에 대한 주장이 되는지 살피고, 관객의 전유가 그 주장을 흔드는 지점까지 짚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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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 갈래의 이동 경로와 제약, 피드백을 추상화한 절차적 수사 개념 이미지

이 커버는 절차적 수사를 이동 경로와 제약, 피드백의 관계로 해석해 GPT Image 2로 생성한 개념 이미지다. 실제 게임 화면이나 설치를 기록한 사진이 아니다.

가상의 전시장 바닥에 두 개의 발판이 있다고 하자. 왼쪽을 밟으면 벽의 빛이 약해지고, 오른쪽을 밟으면 천장의 소리가 빨라진다. 어느 쪽에도 설명은 없다. 관객은 몇 번 오가며 작품이 허용한 행동과 그 결과를 익힌다. 이때 작품은 빛과 소리만 보여 주지 않는다. 세계가 어떤 선택으로 이루어져 있고, 선택에는 어떤 결과가 따른다는 모델을 몸으로 연습시킨다.

절차적 수사(procedural rhetoric)는 이런 순간을 읽는 언어다. 이언 보고스트(Ian Bogost)는 컴퓨터가 규칙을 실행해 과정의 표상을 만들 수 있으며, 그 과정 자체가 논증의 수단이 된다고 보았다. 그의 설명에서 절차적 수사는 말, 글, 이미지에만 기대지 않고 규칙 기반 표상과 상호작용으로 설득하는 실천이다.[1] 게임에서 발전한 개념이지만, 관객의 입력에 반응하는 설치와 시뮬레이션, 참여형 전시에도 적용할 수 있다.

규칙을 읽는다고 해서 규칙이 관객을 완전히 지배한다고 볼 수는 없다. 미겔 시카트(Miguel Sicart)는 절차 중심 분석이 플레이어가 규칙을 해석하고 비틀며 자기 방식으로 사용하는 일을 축소할 수 있다고 비판했다.[2] 미디어아트에서 이 개념을 쓰려면 이 반론도 함께 봐야 한다. 작품이 설계한 경로와 관객이 실제로 걷는 경로는 늘 같지 않다.

작품의 주장은 설명문 밖에도 있다

평면 이미지의 주장을 읽을 때 우리는 무엇이 화면에 들어왔고 무엇이 잘렸는지 살핀다. 절차가 있는 작품에서는 질문이 하나 더 필요하다. 관객이 할 수 있는 행동은 무엇이고, 어떤 행동은 처음부터 선택지에 없는가. 무엇이 성공으로 처리되고, 실패하면 어디로 돌아가는가. 작품이 반복해서 되돌려 주는 피드백은 무엇인가.

예를 들어 가상의 생태계를 다루는 시뮬레이션이 있다고 하자. 관객은 물과 에너지를 배분할 수 있지만, 생산량을 줄이는 선택은 할 수 없다. 화면의 문장은 환경 보호를 말할지 몰라도, 절차는 성장을 고정된 전제로 둔다. 반대로 희소한 자원을 나누는 과정에서 한 집단의 이익이 다른 집단의 손실로만 계산된다면, 시스템은 갈등을 제로섬 관계로 모델링한다. 이런 전제는 배경 설정이 아니라 작품의 주장이다.

보고스트가 말하는 절차적 표상은 현실을 그대로 복제하지 않는다. 어떤 시스템이 어떻게 작동하는지에 대한 관점을 규칙으로 구성한다.[1] 따라서 분석의 초점은 사실적인 그래픽이나 데이터의 양보다 모델이 포함하고 뺀 관계에 놓인다. 시뮬레이션은 복잡한 세계를 실행 가능한 크기로 줄여야 한다. 문제는 축소 자체가 아니라 무엇을 지운 채 세계를 설명했다고 여기는가다.

인터랙티브 설치에 흔히 붙는 “관객의 움직임에 반응한다”는 소개만으로는 부족하다. 카메라가 어느 몸을 감지하는지, 한 사람과 여러 사람이 들어왔을 때 반응이 어떻게 달라지는지, 아무도 움직이지 않으면 작품이 멈추는지까지 알아야 관계의 방향이 드러난다. 입력과 출력 사이의 규칙을 생략한 채 참여를 말하면, 관객은 작품의 공동 저자라기보다 미리 정해진 효과를 호출하는 스위치가 될 수 있다.

선택지와 피드백은 가치 판단을 숨긴다

절차적 수사는 눈에 보이는 버튼보다 행동의 순서를 본다. 먼저 등록해야 다음 장면으로 갈 수 있는가. 한 번 고른 선택을 되돌릴 수 있는가. 작품은 빠른 반응에 보상하고 오래 머무는 관객에게 불이익을 주는가. 같은 입력에도 결과가 무작위로 달라진다면 그 차이를 알아차릴 수 있는가. 인터페이스의 편리함을 채점하려는 질문은 아니다. 작품이 무엇을 정상적인 행동으로 규정했는지 찾으려는 질문이다.

점수와 보상은 가장 쉽게 보이는 피드백이다. 하지만 침묵도 피드백이다. 센서가 특정 키나 목소리, 몸의 높이를 감지하지 못하는데 작품이 아무 신호도 주지 않는다면, 그 관객의 행동은 시스템 안에서 일어나지 않은 일이 된다. 기술적 한계가 그대로 절차의 경계가 되는 셈이다. 제작자가 차별을 의도하지 않았더라도, 누가 반응을 얻고 누가 빈 화면 앞에 남는지는 작품 경험의 일부다.

생성형 AI를 재료로 삼는 작업에서는 결과 이미지보다 생성 과정이 더 많은 것을 말하기도 한다. 프롬프트를 입력하고, 거절 메시지를 받고, 표현을 바꾸고, 여러 결과 중 하나를 고르는 동안 창작은 반복 생성과 선별의 과정이 된다. 모든 AI 작업이 같은 주장을 하는 것은 아니다. 모델, 인터페이스, 접근 권한, 저장 방식이 달라지면 절차도 달라진다. “AI가 창작을 바꾼다”는 큰 문장보다 어떤 행동이 쉬워지고 어떤 시도가 중단되는지를 기록하는 편이 정확하다.

규칙의 효과는 한 번의 선택보다 반복에서 커진다. 관객은 무엇을 하면 반응이 오는지 학습하고, 곧 작품이 원하는 몸짓을 더 효율적으로 수행한다. 이 학습은 즐거울 수 있고, 작품의 구조를 간파하는 쾌감도 준다. 동시에 가능한 행동의 범위를 좁힌다. 인터랙션이 자유로워 보이는 순간에도 관객은 반응을 얻기 위해 자신을 시스템에 맞추고 있을 수 있다.

관객은 규칙을 그대로 받아들이지 않는다

절차적 수사만 강조하면 작품의 의미가 코드 안에 완성되어 있고 관객은 그것을 해독하기만 한다는 결론에 빠지기 쉽다. 시카트의 비판은 바로 이 지점을 겨눈다. 그는 규칙에 내장된 가치만으로 게임의 정치와 윤리를 설명하면 플레이어가 가져오는 해석, 수행, 창조적 전유를 놓친다고 주장한다.[2] 규칙은 의미의 조건이지만, 의미 전체는 아니다.

전시장에서도 관객은 제작자가 예상한 순서로만 움직이지 않는다. 둘이 동시에 센서 앞에 서고, 작품이 요구한 동작을 과장하고, 반응이 없는 영역을 일부러 찾는다. 다른 관객의 행동을 구경하며 직접 참여하지 않을 수도 있다. 고장이나 지연을 작품의 일부로 받아들이기도 한다. 이런 행동은 설계된 수사를 무효로 만들기보다 그 한계를 드러낸다.

절차적 수사를 분석할 때는 제작자가 만든 규칙의 지도와 관객이 만든 사용의 지도를 겹쳐 봐야 한다. 첫 번째 지도에는 가능한 입력, 차단된 행동, 상태 변화, 보상과 종료 조건이 들어간다. 두 번째 지도에는 우회, 협력, 거부, 오독, 기다림처럼 규칙이 온전히 예측하지 못한 움직임이 남는다. 둘이 어긋나는 곳에서 작품의 정치와 미학이 구체적으로 보인다.

이 차이는 참여를 무조건 해방적인 형식으로 부르는 습관도 막아 준다. 관객이 버튼을 누를 수 있다는 사실은 권한을 가졌다는 뜻이 아니다. 바꿀 수 있는 값이 장식에 그치고 핵심 규칙은 닫혀 있을 수 있다. 반대로 선택지가 적더라도 관객이 규칙의 부당함을 알아차리고 거부할 여지는 생길 수 있다. 참여의 정도보다 어떤 결정이 열려 있고, 거부가 작품 안에서 어떤 결과를 갖는지가 중요하다.

전시에서는 규칙도 감상 가능한 형태여야 한다

절차를 작품의 재료로 삼았다면 관객이 그 절차를 시험할 시간과 단서를 제공해야 한다. 첫 반응만 보고 지나가면 규칙과 우연을 구분하기 어렵다. 같은 행동을 다시 해 볼 수 있는가, 다른 선택의 결과를 비교할 수 있는가, 시스템이 상태를 기억하는가를 관객이 확인할 수 있어야 한다. 체류 시간이 짧은 전시라면 규칙도 그 시간 안에서 드러나도록 설계해야 한다.

오류와 접근성도 설명문 뒤로 밀어둘 문제가 아니다. 센서의 인식 범위, 대기 시간, 필요한 힘이나 속도, 소리와 색에 의존하는 신호는 누가 절차에 진입할 수 있는지를 정한다. 대체 입력과 명확한 상태 표시, 중도 이탈 경로는 편의 기능이 아니라 작품의 수사 구조를 바꾼다. 모든 관객에게 같은 행동을 요구하면서 참여형이라고 부르는 것은 열려 있는 선택지와 실제 접근 가능성을 혼동하는 일이다.

기록 방식도 결과 화면에 머물 수 없다. 설치 전경 한 장과 완성된 영상만으로는 어떤 입력이 무엇을 바꿨는지 알 수 없다. 규칙의 버전, 센서의 범위, 한 회차의 지속 시간, 실패와 초기화 조건, 관객이 발견한 우회 행동을 함께 남겨야 한다. 그래야 나중의 관객과 보존 담당자가 작품의 외형뿐 아니라 행위의 구조를 다시 검토할 수 있다.

절차적 수사가 인터랙티브 작품의 정답을 찾아 주지는 않는다. 대신 작품이 관객에게 건네는 행동의 문법을 보게 한다. 규칙은 세계를 압축하고 무엇이 가능하며 정상인지 제안한다. 관객은 그 제안을 따르기도 하고 망가뜨리기도 한다. 비평이 할 일은 설계된 절차를 구체적으로 읽으면서, 그 절차 밖으로 새는 몸과 해석을 놓치지 않는 것이다.

출처

  1. Ian Bogost, “Persuasive Games on Mobile Devices,” MIT 호스팅 PDF
  2. Miguel Sicart, “Against Procedurality,” Game Studies 11(3), 2011
  3. MIT Press, Persuasive Games: The Expressive Power of Videogame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