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는 무엇을 중계하는가
서울미디어시티비엔날레의 1996년 전신부터 2025년 제13회까지 살펴보며, 도시가 전시장 밖의 스크린·기억·제도·관객을 연결하는 매체가 되는 방식을 읽는다.

커버는 도시의 매체 환경을 표현한 AI 생성 개념 이미지이며, 실제 전시장이나 작품을 기록한 사진이 아니다.
1996년 10월, 서울의 미디어아트는 미술관 안에만 있지 않았다. 제1회 《SEOUL in MEDIA 1988-2002》는 당시 서울시립미술관이 쓰던 서울 600년 기념관에서 열렸지만, 작품의 일부는 5개 도시의 전광판 14곳과 은행 정보 TV 8곳으로 흘러갔다. 출퇴근길과 금융 업무의 화면, 도시의 상업적 시선이 잠시 전시의 배포망이 되었다.
이 장면을 따라가면 서울미디어시티비엔날레의 성격이 또렷해진다. 이 행사는 새로운 장비를 한자리에 모으는 기술 박람회에서 출발하지 않았다. 화면이 놓인 장소, 신호가 이동하는 길, 도시가 이미 운영하던 정보 인프라를 전시의 조건으로 끌어들였다. 여기서 미디어는 TV나 비디오 같은 기기만을 뜻하지 않는다. 무엇을 어디까지 보내고, 누가 어떤 상황에서 보게 하며, 그 경험을 어떤 기록으로 남길지 정하는 관계 전체를 가리킨다.
미술관을 나간 화면은 무엇을 바꾸었나
서울미디어시티비엔날레의 공식 기록은 1996년 전시를 매체와 도시 환경의 변화에 주목한 연례 프로젝트로 설명한다. 제목의 1988-2002는 서울올림픽과 한일월드컵 사이에 놓인 서울의 시간을 가리켰다. 전시장은 한 건물에 머물지 않았고, 도시 전광판과 은행의 정보 TV가 함께 사용되었다. 미디어아트를 도시 문화와 생활이 교차하는 자리에서 보려는 시도였다.
2000년 이 프로젝트는 제1회 서울국제미디어아트비엔날레 《media_city seoul 2000: city: between 0 and 1》로 이어졌다. 공식 아카이브에 따르면 전시는 서울역사박물관(당시 서울시립박물관), 서울시립미술관, 서울600년기념관, 지하철역, 도심전광판에서 2000년 9월 2일부터 11월 15일까지 진행되었다. 미디어아트 전시 《Escape》뿐 아니라 지하철 프로젝트, 전광판 프로젝트, 체험 전시, 당시의 미디어 산업 기술을 소개하는 프로그램이 함께 편성되었다.
이 구성은 전시가 도시로 확장되었다는 말의 실체를 보여 준다. 작품의 크기가 커지거나 야외 조각이 놓였다는 뜻에 그치지 않는다. 지하철 승강장의 대기 시간, 전광판의 짧은 노출 시간, 통행자의 흐름, 행정기관과 기업이 관리하는 화면이 작품의 형식에 개입했다. 관객도 전시를 보러 온 사람만이 아니었다. 다른 일을 하다 작품을 마주친 사람까지 더해지자 감상 시간과 동의, 집중의 정도가 제각기 달라졌다.
미술관 밖으로 나갔다고 저절로 공공성이 생기지는 않는다. 전광판은 누구나 볼 수 있지만 누구나 사용할 수 있는 화면은 아니다. 지하철은 대중적인 장소지만 안전 규정과 광고 계약, 이동 동선이 이미 촘촘하게 정해져 있다. 도시를 매체로 사용하면 더 많은 관객을 만나는 만큼 화면과 장소를 통제하는 제도 안으로 깊이 들어가게 된다. 서울미디어시티비엔날레의 초기 기록은 도시형 미디어아트에서 규모보다 배포 권한이 중요하다는 사실을 드러낸다.
새 매체는 새 기계만을 가리키지 않는다
행사의 역사를 장비의 발전 순서로만 읽으면 중요한 전환을 놓친다. 1990년대의 전광판과 비디오, 2000년대의 디지털 네트워크를 나열하는 것만으로는 각 전시가 왜 그 시기에 그런 주제를 택했는지 설명하기 어렵다. 서울이 겪은 압축적 변화, 아시아의 식민과 냉전 경험, 사라진 기억과 보이지 않는 관계도 미디어가 무엇을 연결하고 무엇을 누락하는지에 영향을 준다.
2014년의 《Ghosts, Spies, and Grandmothers》는 이 문제를 선명하게 보여 준다. 제8회 공식 기록은 ‘유령’을 잊힌 아시아의 역사와 전통, ‘스파이’를 냉전의 기억, ‘할머니’를 여성과 시간의 은유로 설명한다. 전시는 2014년 9월 2일부터 11월 23일까지 서울시립미술관 서소문본관과 한국영상자료원에서 열렸고, 아시아가 겪은 식민화와 냉전, 급속한 경제성장과 사회 변화를 돌아보았다.
여기서 매체는 최신 기술의 동의어가 아니다. 유령은 현재에 모습을 드러내지 못한 과거를 중계하고, 스파이는 정보가 경계를 통과하는 불안과 통제를 드러낸다. 할머니라는 형상은 공식 역사에서 밀려난 경험이 세대를 건너 전달되는 시간을 불러온다. 영상, 소리, 퍼포먼스는 이 내용을 담는 그릇이면서, 부재한 존재를 현재의 감각으로 다시 호출하는 방법이 된다.
이렇게 보면 미디어아트의 범위도 달라진다. 센서나 프로젝터를 사용하지 않아도 무엇이 기억되고 누구의 목소리가 전달되는지 묻는다면 매체의 정치와 맞닿는다. 가장 새로운 장치를 사용하더라도 어떤 관계를 매개하는지 드러나지 않으면 기술 시연에 머물 수 있다. 서울미디어시티비엔날레의 역사는 ‘새로움’을 기기 출시 시점이 아니라 동시대의 감각과 역사적 공백을 연결하는 방식에서 찾게 한다.
2025년, 영매와 기술이 한 문장에 놓였다
2025년 제13회 《Séance: Technology of the Spirit》은 같은 질문을 다른 방식으로 꺼냈다. 공식 프로젝트 페이지에 따르면 전시는 2025년 8월 26일부터 11월 23일까지 서울시립미술관, 낙원상가, 시네마테크 서울아트시네마에서 열렸다. 제목에 등장하는 séance는 보이지 않는 존재와 접촉하기 위한 모임을 뜻한다. 여기서 기술은 효율을 높이는 도구에 머물지 않고, 부재와 현전 사이의 접촉을 조직하는 장치로 읽힌다.
제13회 가이드북의 목차에는 ‘부활 카페’, ‘마녀와 영매’, ‘트랜스’, ‘실천적 우주론’, ‘테크네’, ‘등가교환’, ‘시네마’ 같은 항목이 놓여 있다. 서로 다른 종교와 예술의 전통을 하나의 의미로 합치기보다, 기술이 오랫동안 감각 바깥의 존재를 부르고 해석하는 행위와 얽혀 왔다는 점을 여러 방향에서 살피는 구성이다.
비엔날레의 연구 글 〈Cinema and Séance〉는 영화와 영매술이 모두 보이지 않거나 부재한 것을 감각 가능한 형태로 불러오겠다는 약속을 품었다고 짚는다. 이 관점에서 카메라와 영사기는 현실을 복사하는 중립적 장치가 아니다. 이미 지나간 시간의 빛을 다시 출현시키고, 관객이 그 흔적 앞에서 현재를 경험하게 하는 매개 장치다.
1996년의 도시 전광판과 2025년의 séance는 멀리 떨어진 주제로 보인다. 그럼에도 둘은 화면과 장치가 무엇을 보여 주는지보다 무엇을 현재에 도착하게 하는지 묻는다. 신호는 도시를 가로질러 이동할 수도 있고, 억눌린 기억이나 죽은 이의 흔적을 시간 너머에서 불러올 수도 있다. 비엔날레의 매체 개념은 기기의 종류를 늘리기보다 중계의 범위를 공간에서 기억과 역사로 넓혀 왔다고 읽을 수 있다.
‘오늘·어제·내일’로 짜인 아카이브
서울미디어시티비엔날레의 현재 웹 아카이브는 자료를 Today, Yesterday, Tomorrow로 나눈다. Today에는 당대 행사의 작가와 작품, 프로그램이 놓이고, Yesterday에서는 과거 프로젝트와 참여자, 보도 자료를 찾아볼 수 있다. Tomorrow에는 키워드, 출판물, 연구, 영상이 모인다. 단순한 메뉴처럼 보이지만, 반복 행사를 시간 속에서 어떻게 사용할지 드러내는 편집적 선택이다.
비엔날레는 몇 달 뒤 문을 닫는다. 현장 설치는 해체되고, 도시 전광판의 송출도 끝나며, 퍼포먼스의 관객은 흩어진다. 남는 것은 작품 목록과 사진만이 아니다. 어디에서 누가 무엇을 보았는지, 어떤 기관과 기술이 이를 가능하게 했는지, 당시의 언어가 도시와 미디어를 어떻게 정의했는지에 관한 기록이 남는다. 아카이브는 과거를 보관하는 창고가 아니라 다음 전시가 과거의 선택을 다시 질문하게 하는 작업대가 된다.
이때 기록은 중립적이지 않다. 작품 이미지의 저작권, 참여자 이름의 표기, 사라진 웹 작업의 재현 방식, 당시 장소의 명칭, 어떤 문서가 공개되고 무엇이 빠지는지가 기억의 형태를 결정한다. 미디어아트 기관이 맡아야 할 일은 새로운 작품을 소개하는 데서 끝나지 않는다. 작동을 멈춘 장치와 사라진 현장을 나중에 어떤 근거로 다시 이해할 수 있게 할지도 포함된다.
서울미디어시티비엔날레의 아카이브는 바로 이 대목에서 힘을 발휘한다. 1996년의 전광판 프로젝트를 지금 보는 까닭은 오래된 기술을 향수로 소비하기 위해서가 아니다. 당시 도시가 어떤 화면을 공공 매체로 상상했고, 그 화면에 접근할 수 있었던 주체가 누구였는지 다시 살필 수 있기 때문이다. 과거의 전시는 완결된 모범 답안이 아니라, 오늘의 기술과 공공성을 비교할 수 있는 기준점이 된다.
도시를 매체로 삼을 때 확인할 것
도시형 미디어아트를 기획할 때는 장비 목록보다 신호의 경로를 먼저 그려야 한다. 작품은 어느 장소에서 작동하고, 그 장소는 누가 관리하는가. 관객은 전시를 선택해서 보게 되는가, 생활 동선에서 예고 없이 마주치는가. 수집되는 데이터나 이미지가 있다면 누가 보관하고 언제 지우는가. 행사가 끝난 뒤에도 작품의 조건과 실패를 확인할 기록이 남는가.
이 질문들은 작품의 창의성을 제한하는 행정 점검에 그치지 않는다. 도시를 전시장으로 확장했을 때 작품의 의미를 실제로 결정하는 재료이기 때문이다. 전광판의 밝기와 노출 시간, 지하철의 혼잡도, 미술관의 개관 시간, 웹 아카이브의 접근성은 관객이 작품을 만나는 방식을 바꾼다. 도시의 미디어 인프라는 비어 있는 캔버스가 아니라 권한과 노동, 규칙이 이미 배치된 환경이다.
서울미디어시티비엔날레를 길게 보면, 이 행사의 특징은 특정 장비를 선도적으로 소개했다는 사실에만 있지 않다. 1996년에는 도시의 기존 화면을 전시의 회로로 바꾸었고, 2000년에는 지하철과 전광판, 미술관을 하나의 프로그램 안에 묶었다. 2014년에는 냉전과 망각, 세대의 기억을 매체의 문제로 옮겼으며, 2025년에는 기술과 영매, 영화와 부재의 관계를 다시 물었다.
도시는 거대한 스크린이어서 매체가 되는 것이 아니다. 서로 다른 시간과 장소, 사람과 제도를 연결하고, 어떤 신호는 통과시키며 다른 신호는 지우기 때문에 매체가 된다. 좋은 도시형 미디어아트는 그 연결을 화려하게 덮기보다 누가 중계망을 설계했고 무엇이 그 바깥에 남았는지 보이게 한다. 서울미디어시티비엔날레의 긴 실험은 미디어아트를 새 장치의 역사보다 전달과 기억, 공공성의 역사로 읽게 하는 데 의미가 있다.
직접 읽은 자료
- 서울미디어시티비엔날레, About SMB.
- 서울미디어시티비엔날레, 제1회 《SEOUL in MEDIA 1988-2002》.
- 서울미디어시티비엔날레, 제1회 서울국제미디어아트비엔날레 《media_city seoul 2000: city: between 0 and 1》.
- 서울미디어시티비엔날레, 2014 《Ghosts, Spies, and Grandmothers》.
- 서울미디어시티비엔날레, 제13회 《Séance: Technology of the Spirit》.
- 서울미디어시티비엔날레, 《Séance: Technology of the Spirit》 가이드북.
- Lukas Brasiskis, 〈Cinema and Séance〉, 서울미디어시티비엔날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