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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edia Art Article · 2026.09.17

임민욱의 비디오에 남은 도시의 목소리와 체온

임민욱의 《New Town Ghost》, 《S.O.S—Adoptive Dissensus》, 《The Weight of Hands》를 따라 도시의 기억이 목소리와 이동, 체온으로 기록되는 방식을 살핀다. 퍼포먼스와 촬영이 만나는 지점에서 공공장소를 다루는 미디어아트의 제작 책임을 짚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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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의 틈을 지나는 목소리와 체온을 은빛 흐름과 따뜻한 흔적으로 표현한 추상 개념 이미지

표지 이미지는 이 글을 위해 AI로 생성한 개념 일러스트레이션이며, 임민욱의 작품이나 실제 전시를 촬영한 사진이 아니다.

트럭 위에서 확성기를 든 사람이 시를 랩으로 외친다. 곁에서는 드럼이 박자를 만든다. 임민욱의 《New Town Ghost》(2005)에 등장하는 이 장면은 도시를 조용히 관찰하는 기록과 거리가 있다. KADIST는 작품 속 두 퍼포머가 영등포 지역 출신이며, 산업지대가 대형 백화점과 브랜드가 들어선 뉴타운으로 바뀌는 상황에서 공연이 펼쳐진다고 설명한다. 개발의 풍경 안으로 그곳에서 살아가는 사람의 목소리가 끼어든다.[1]

도시를 다룬 영상은 건물이 얼마나 달라졌는지 보여 줄 수 있다. 그러나 바뀐 건물의 모습만으로는 그 변화를 겪는 사람의 시간을 알기 어렵다. 임민욱은 이 간극을 발화와 이동, 몸의 열로 다룬다. 카메라는 이미 일어난 사건을 받아 적는 데 머물지 않는다. 먼저 특정한 장소에 몸과 소리를 놓고, 그 만남이 어떻게 보이고 들리는지를 영상으로 남긴다.

이 글은 임민욱의 전체 작업을 요약하기보다, 워커아트센터가 2012년 《Minouk Lim: Heat of Shadows》에서 함께 소개한 초기 영상 작업들을 읽는다. 《New Town Ghost》, 《S.O.S—Adoptive Dissensus》(2009), 《The Weight of Hands》(2010)는 서로 다른 장소와 장치를 사용하지만, 도시의 변화 속에서 사라지는 기억을 다룬다는 연결점이 있다.[2] 여기서 중요한 것은 새로운 영상 기술의 도입보다, 누구의 몸이 어떤 위치에서 도시와 마주하도록 구성되었는가이다.

트럭 위의 목소리는 어디를 향하는가

《New Town Ghost》에서 확성기와 드럼은 메시지를 또렷하게 전달하는 보조 도구만은 아니다. 이동하는 트럭에 실리면서 발화의 장소와 청중이 계속 바뀐다. 고정된 무대 앞에 관객이 모이는 공연과 달리, 도로와 주변의 생활 공간이 공연의 조건에 들어온다. 워커아트센터는 이 작품을 서울의 뉴타운 개발 현장을 지나며 무관심한 시민들을 향해 발화하는 슬램 시인의 영상으로 소개한다.[2]

KADIST의 설명은 영등포의 변화와 함께, 시가 새로운 쇼핑몰과 고층 건물을 언급하며 신자유주의뿐 아니라 무관심한 시민들도 겨냥한다고 짚는다.[1] 따라서 이 장면을 개발에 저항하는 주민 전체의 목소리로 곧바로 확대하면 곤란하다. 확인되는 것은 특정 퍼포머의 발화와 그 발화가 놓인 도시적 상황이다. 그들이 지역의 모든 입장을 대표한다거나, 작품이 개발 정책을 바꾸었다는 주장은 별도의 근거가 필요하다.

오히려 작품의 긴장은 말하는 사람과 지나치는 사람 사이에 있다. 같은 거리에 있다고 해서 서로의 경험이 공유되지는 않는다. 확성기는 목소리를 멀리 보내지만, 듣는 사람이 그 말에 응답하는 것까지 보장하지 않는다. 이렇게 읽으면 영상은 도시의 상실을 설명하는 자료인 동시에, 누군가의 말이 공적인 소리로 나왔을 때 발생하는 거리감을 드러낸다.

이 차이는 거리의 미디어아트를 볼 때 유용하다. 장소가 공개되어 있다는 사실과 발언의 기회가 열려 있다는 사실은 같지 않다. 음량이 커지거나 영상이 널리 유통되어도, 발화한 사람이 어떤 조건에서 말했는지는 남겨 두어야 한다. 작품 속 목소리를 감동적인 도시의 배경음으로만 소비하면, 그 목소리가 겨냥했던 무관심을 되풀이할 수 있다.

배의 이동이 관객의 자리를 바꿀 때

《S.O.S—Adoptive Dissensus》에서는 관객의 이동이 더 직접적인 조건이 된다. 워커아트센터의 설명에 따르면, 야간 한강 유람선의 승객들은 강변에 마련된 퍼포먼스와 마주한다.[2] 강은 단순한 촬영 배경이 아니다. 배와 강변 사이의 거리가 무엇을 볼 수 있는지 결정하고, 항로를 따라 움직이는 시간이 장면을 만나는 순서에 관여한다.

이 구성을 오늘날의 인터랙티브 전시와 곧바로 같은 것으로 부를 필요는 없다. 승객이 배에 올라 현장을 함께 통과한다는 사실만으로 작품의 전개를 자유롭게 바꾸는 것은 아니다. 관객의 위치와 이동이 작품의 일부가 되는 일, 관객에게 선택권이 주어지는 일은 구분해야 한다. 이 작품을 읽을 때에는 버튼이나 센서의 유무보다, 관객이 어떤 거리에서 사건을 만나도록 배치되었는지 살피는 편이 적절하다.

배 위의 관객과 나중에 영상을 보는 관객도 같은 경험을 하지 않는다. 현장에서는 강의 폭과 이동 시간이 장면에 관여하지만, 영상에서는 카메라의 위치와 편집이 관찰의 범위를 정한다. 퍼포먼스의 기록이라는 이유로 화면을 현장 전체와 같게 취급할 수 없다. 임민욱의 작업을 출발점으로 삼으면, 미디어아트 기록에는 무엇이 화면에 남았는지와 함께 무엇이 현장에만 있었는지도 물을 수 있다.

적외선 카메라에 남는 몸

《The Weight of Hands》는 이동하는 사람을 다른 방식으로 기록한다. 워커아트센터는 출입이 제한된 공사 현장들을 찾아가는 사람들에게서 발산되는 온기를 적외선 카메라가 기록한다고 설명한다.[2] Tate의 개별 작품 페이지도 제목과 제작연도 2010년을 확인해 준다.[3] 여기서 적외선 촬영은 어두운 장면을 보완하는 수단을 넘어, 몸이 이미지 안에 나타나는 방식을 바꾸는 선택으로 읽을 수 있다.

일반적인 도시 풍경에서는 건물과 도로가 화면의 구조를 잡고, 사람은 그 안의 작은 요소가 되기 쉽다. 몸의 온기를 기록하는 영상에서는 시선의 중심이 달라진다. 도시의 재료와 경계 사이를 지나가는 존재가 열의 차이로 드러난다. 이는 작품의 촬영 방식에서 출발한 해석이지, 적외선 기술 자체가 인간의 경험을 더 진실하게 보여 준다는 뜻은 아니다.

온기를 볼 수 있어도 그 사람의 기억이나 감정까지 측정한 것은 아니다. 열감지 이미지가 강한 정서를 일으킨다는 사실과, 그 이미지가 특정한 상처를 증명한다는 주장은 다르다. 기술이 무엇을 감지했는지 정확히 말할수록 작품의 해석도 더 분명해진다. 센서가 제공하지 않은 의미를 측정 결과인 것처럼 덧붙이지 않으면서도, 작가가 그 감각적 차이를 왜 선택했는지는 논의할 수 있다.

따라서 이 작품을 기술의 선악에 관한 간단한 전환으로 읽는 것도 조심해야 한다. 감시에 쓰일 수 있는 장비가 예술에 들어왔다고 해서 곧바로 해방의 도구가 되지는 않는다. 어떤 장소로 향하는 몸을 누가 촬영하고, 그 몸이 관객 앞에 어떤 이미지로 나타나는지가 중요하다. 장비의 종류만으로는 이 관계를 설명할 수 없다.

공공장소를 기록하는 제작의 책임

임민욱의 초기 작업들은 비디오와 퍼포먼스를 떨어뜨려 보기 어렵게 만든다. 트럭의 이동과 발화, 강변의 공연과 유람선, 제한된 장소와 몸의 온기는 촬영 전에 이미 관계를 이루고 있다. 영상의 형식은 이 관계를 어떤 거리와 시간으로 보여 줄지 결정한다. 한국 미디어아트를 기술 장비의 변화만으로 설명하면 이런 제작의 선택을 놓치기 쉽다.

이로부터 전시 제작과 교육에 적용할 기준을 제안할 수 있다. 지역을 촬영할 때에는 화면이 담은 풍경뿐 아니라, 누가 말하고 누가 설명의 대상이 되는지 기록할 필요가 있다. 현장 퍼포먼스를 영상으로 옮길 때에는 현장의 관객과 화면의 관객이 공유하지 못하는 조건을 구분해야 한다. 센서를 사용한다면 실제로 감지한 값과 작품이 그 값에 부여한 의미를 분리해 설명해야 한다. 이는 임민욱이 제시한 제작 매뉴얼이 아니라, 앞선 작품들에서 도출한 필자의 적용 기준이다.

이 기준이 작품을 윤리적 점검표로 환원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형식을 더 구체적으로 읽기 위한 질문에 가깝다. 왜 그 목소리는 고정된 무대가 아닌 트럭에 실렸고, 왜 어떤 장면은 강 건너에서 마주하게 했는가. 몸을 열로 기록했을 때에는 무엇이 드러나고 무엇이 남지 않았는가. 이런 질문이 있어야 사회적 주제와 매체의 선택이 따로 놀지 않는다.

《New Town Ghost》를 다시 떠올리면, 화면에 남는 것은 바뀌어 가는 동네의 모습만이 아니다. 그 안에서 굳이 목소리를 내는 행위와, 그 말을 듣거나 지나칠 수 있는 거리가 함께 남는다. 임민욱의 비디오를 읽는 일은 도시의 변화를 바라보는 관객 자신의 자리도 확인하는 일이 된다.

참고 자료

[1] KADIST, 《New Town Ghost》 작품 소개 — 영등포의 변화, 퍼포머와 공연의 구성, 발화의 대상. 작품 길이는 기관별 표기가 달라 이 글에서는 제시하지 않았다.

[2] Walker Art Center, 《Minouk Lim: Heat of Shadows》 — 2012년 전시와 각 영상 작업의 이동·퍼포먼스·적외선 촬영 구조.

[3] Tate, 《The Weight of Hands》 작품 페이지 — 작품 제목과 제작연도 확인. 촬영 장면의 구체적 설명은 워커아트센터 자료를 근거로 삼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