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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ticle 2026년 4월 26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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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념비는 어떻게 냉전을 다시 배달하는가

기념비는 어떻게 냉전을 다시 배달하는가

체원준의 작업에서 기념비는 과거를 기념하는 조각이 아니다. 그것은 국가가 자신을 멀리 보내는 장치이고, 외교가 돌과 청동의 형태로 굳어진 매체이며, 한반도의 냉전이 아프리카의 광장과 박물관과 독립기념관을 통해 다시 돌아오는 이미지 시스템이다.

그래서 그의 작업은 단순한 다큐멘터리도, 한국 현대사의 보충 설명도 아니다. 사진, 다채널 영상, 아카이브, 다큐멘터리 극, 커뮤니티 공간을 오가며 그는 “무엇이 보이는가”보다 “무엇이 보이도록 조직되었는가”를 묻는다. 이 질문이 체원준을 한국 미디어아트의 중요한 작가로 만든다. 기술 장치의 새로움보다 이미지가 유통되는 제도, 기념비가 작동하는 외교, 공동체가 스스로를 보이게 만드는 미디어 인프라가 그의 핵심 매체이기 때문이다.

기념비는 움직이지 않지만, 이데올로기는 이동한다

체원준의 대표적 작업군인 Mansudae Master Class는 북한 만수대창작사와 해외 프로젝트가 아프리카 여러 국가에 세운 기념비, 공공건축, 사회주의 리얼리즘 조각을 추적한다. 여기서 흥미로운 것은 기념비가 너무 크고 무겁기 때문에 오히려 “이동”의 매체로 보인다는 점이다. 청동상과 독립기념관은 한 장소에 고정되어 있지만, 그것을 가능하게 한 기술자, 양식, 외교 관계, 부채, 이념, 냉전의 기억은 대륙을 가로질러 이동한다.

한국에서 냉전은 흔히 남북 분단, 미국과 소련, DMZ의 이미지로 압축된다. 체원준은 이 압축을 풀어낸다. 북한은 아프리카 독립국들과 관계를 맺었고, 유엔에서의 외교적 지지를 확보하려 했으며, 사회주의 리얼리즘 양식을 공공기념물의 형태로 수출했다. 그러면 한반도의 냉전은 더 이상 한반도 내부의 사건만이 아니다. 그것은 아프리카의 광장, 독립 영웅의 동상, 국가기념관, 건축 양식, 그리고 그 장소를 다시 촬영하고 편집하는 현대미술의 전시장까지 이어지는 시각적 네트워크가 된다.

이 지점에서 체원준의 작업은 “북한이 아프리카에 어떤 조각을 만들었는가”라는 사실 목록을 넘어선다. 그는 기념비를 이미지의 물류 시스템으로 읽는다. 어떤 국가는 어떤 기억을 외주화하고, 어떤 양식은 다른 대륙의 독립 서사에 덧씌워지며, 어떤 조각은 외교의 증거이자 역사적 망각의 장치가 된다. 기념비는 과거를 저장하는 것이 아니라, 과거를 특정한 방향으로 배송한다.

아카이브는 증거가 아니라 배치다

체원준의 출발점에는 국가가 이미지를 다루는 방식에 대한 예민함이 있다. 그는 군 복무 시절 증거사진과 관련된 경험을 거쳤고, 이후 서울의 군사 시설, 벙커, 폐허, 제한된 장소, 도시의 사각지대를 사진과 영상으로 다루었다. 이 배경은 그의 이미지가 왜 극적인 폭로보다 차분한 증거의 형식을 취하는지 설명해 준다.

하지만 그의 아카이브는 “진실을 찾아내는 보관소”에 머물지 않는다. 아카이브는 언제나 배치다. 무엇을 나란히 놓는가, 어떤 장소를 다시 촬영하는가, 어떤 문서와 어떤 목소리를 함께 배치하는가에 따라 역사는 다른 회로로 흐른다. 체원준의 작업에서 사진과 영상은 과거를 복원하는 창이 아니라, 서로 다른 정치적 시간들을 연결하는 편집 장치다.

이 때문에 그의 작업은 미디어아트의 넓은 계보 안에서 읽을 필요가 있다. 미디어아트가 반드시 센서, 프로젝션, 알고리즘, 인터랙션만을 뜻한다면 체원준의 작업은 주변부에 놓일 수 있다. 그러나 미디어를 이미지와 정보가 생산·분류·유통·기억되는 조건으로 본다면, 그의 작업은 매우 강한 미디어적 실천이다. 경찰 사진, 국가 아카이브, 다채널 영상, 전시장 설치, 출판물, 다큐멘터리 극은 모두 역사적 가시성을 다시 편성하는 매체가 된다.

아프로아시아는 과거의 외교가 아니라 현재의 공동체다

체원준의 최근 작업이 중요한 이유는 그가 기념비와 냉전 외교의 연구에만 머물지 않기 때문이다. International Friendship, My Utopia, Capital Black 같은 작업을 거치며 그는 아프로아시아 관계를 과거의 국가 외교가 아니라 현재의 몸, 이주, 지역, 음악, 공동체의 문제로 확장한다.

특히 동두천 보산동, 캠프 케이시 주변, 이른바 “아프리카 타운”과 연결된 활동은 그의 실천을 작가 개인의 다큐멘터리에서 커뮤니티 미디어 인프라로 이동시킨다. Space AfroAsia, Afroasia Eco Museum, AfroAsia Artist Collective와 같은 활동은 전시장이 아니라 공동체가 스스로를 보이게 만드는 장치에 가깝다. 음악 비디오, 교육 프로그램, 전시, 공연, 협업 프로젝트는 모두 “누가 누구를 기록하는가”라는 질문을 다시 배치한다.

여기서 체원준의 작업은 한국 미디어아트의 중요한 전환점을 보여 준다. 미디어는 더 이상 화면 안의 이미지가 아니라, 사람들이 모이고 말하고 촬영하고 공연하고 자신을 공적으로 나타내는 사회적 조건이다. 냉전의 기념비가 국가 간 외교를 물질화했다면, 보산동의 커뮤니티 미디어는 이주민과 지역 공동체가 자신의 존재를 다시 조직하는 작은 공공 인프라가 된다.

한국 미디어아트가 배워야 할 질문

체원준의 작업이 남기는 질문은 간단하지만 불편하다. 우리는 이미지를 너무 쉽게 ‘표현’으로 부른다. 그러나 많은 이미지는 이미 누군가의 행정, 군사, 외교, 이주, 노동, 보존 시스템 안에서 만들어지고 이동한다. 사진은 증거가 되고, 기념비는 외교가 되고, 전시장은 역사적 관계를 다시 라우팅하는 장소가 된다.

그렇다면 미디어아트의 과제는 새로운 장치를 보여 주는 데서 끝나지 않는다. 어떤 이미지가 어떤 제도에 의해 가능해졌는지, 어떤 기억이 어떤 장소로 배송되었는지, 어떤 공동체가 아직 스스로를 보이게 할 장치를 갖지 못했는지 묻는 일이 더 중요해진다.

체원준의 강점은 바로 이 질문을 한국 현대사의 내부에서만이 아니라 아프리카, 북한, 미군기지 주변 도시, 디아스포라 공동체, 전시장과 아카이브의 회로 속에서 함께 던진다는 데 있다. 그래서 그의 작업에서 기념비는 과거의 돌덩이가 아니다. 그것은 아직 도착 중인 냉전의 미디어이며, 우리가 어떤 방식으로 기억을 다시 받을 것인지 묻는 느린 통신 장치다.

참고한 원천 노트

이 글은 DECK vault의 Che Onejoon.md 작가 노트를 바탕으로 공개용 에세이로 재작성했다. 해당 노트는 Palais de Tokyo, KADIST, Seoul Mediacity Biennale, Harvard Asia Center, ART PAPERS, The Art Newspaper 자료를 근거로 체원준의 작업, Mansudae Master Class, International Friendship, My Utopia, Capital Black, Space AfroAsia 관련 맥락을 정리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