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기술은 왜 늘 낡은 약속을 입는가
에르키 후타모의 토포스 고고학으로 몰입, 상호작용, 클라우드처럼 새 기술을 포장하는 오래된 약속과 전시의 언어를 읽는다.

이 커버는 글의 개념을 바탕으로 생성한 비다큐멘터리 이미지다. 실제 작품이나 전시 기록이 아니다.
새로운 스크린이 등장할 때마다 비슷한 약속이 따라온다. 화면의 경계가 사라지고, 관객은 이미지 안으로 들어가며, 멀리 있는 세계가 바로 눈앞에 열린다는 약속이다. 장치의 해상도와 계산 방식은 매번 달라진다. 그런데 그것을 소개하는 문장은 놀랄 만큼 익숙하다.
미디어 역사가 에르키 후타모(Erkki Huhtamo)는 이런 익숙함을 우연이나 게으른 광고 문구로만 보지 않는다. 그는 시대를 건너 반복되는 문화적 공식인 ‘토포스(topos)’를 추적한다. 새 기술의 표면 아래에 어떤 오래된 욕망과 관람 습관이 다시 작동하는지 묻는 방식이다. 이 관점은 신기술을 두고 “예전에도 있던 것”이라고 깎아내리려는 게 아니다. 무엇이 달라졌고, 무엇이 익숙한 이야기로 포장됐는지를 갈라 보려는 것이다.
새로움은 반복을 지운 뒤 등장한다
UCLA Design Media Arts의 공식 소개는 후타모의 미디어 고고학을 정본화된 거대 서사 밖으로 밀려난 미디어 현상을 발굴하는 접근으로 설명한다. 그가 주목하는 토포이는 역사 속에서 거듭 나타나며 새로운 경험의 틀을 제공하는 상투적 공식이다. 스크린, 파노라마, 디오라마, 비디오게임, 모바일 미디어는 서로 다른 장치이지만, 그 주변에서 반복되는 약속을 통해 연결될 수 있다.
후타모는 자신의 논문 「Obscured by the Cloud」에서 미디어 고고학이 하나의 통일된 도구 상자가 아니라고 분명히 적는다. 학자마다 방법은 다르다. 그가 발전시킨 방법은 ‘토포스 연구로서의 미디어 고고학’이다. 토포이는 오래된 문화 전통과 현재를 잇고, 미디어를 둘러싼 담론에 논평을 가하며, 문화산업이 기술을 설명하고 판매할 때 동원하는 모티프가 된다.
후타모는 발명품의 계보만 좇지 않는다. 말과 이미지가 이어지는 방식도 함께 본다. ‘화면을 뚫고 나간다’는 표현을 생각해 보자. 화면을 두 세계를 가르는 벽이 아니라 자유롭게 오가는 문으로 묘사하는 이미지는 새로운 디스플레이가 나올 때마다 돌아온다. 헤드셋, 3D 스크린, 몰입형 프로젝션의 기능은 서로 같지 않지만, 기술을 받아들이게 만드는 상상력은 오래된 길을 이용한다.
파노라마와 VR 사이에는 같은 욕망만 있는 것이 아니다
후타모는 1990년 무렵의 VR 열풍을 지켜보며 정말 완전한 단절이 일어났는지 의심했다. 그는 아카이브에서 19세기의 파노라마와 입체경 열풍을 찾아냈다. 관객이 다른 공간에 들어간 듯 느끼게 하는 욕망은 헤드셋보다 오래되었다. 그의 저서 《Illusions in Motion》은 움직이는 파노라마와 관련 스펙터클을 18세기부터 20세기까지의 미디어 문화 속에서 추적한다. UCLA Art | Sci Center의 출간 소개는 이 책의 범위를 이 긴 시간대로 명시한다.
그렇다고 파노라마와 VR을 같은 매체라고 부를 수는 없다. 토포스를 찾는 일은 차이를 없애는 비교가 아니다. 반복되는 약속을 먼저 확인한 뒤, 그 약속을 실현하는 장치와 제도, 비용, 데이터 수집, 관객의 신체 배치가 어떻게 달라졌는지 살펴보는 순서에 가깝다. ‘몰입’이라는 단어가 같아도 19세기 흥행사의 이동식 그림, 미술관의 프로젝션 설치, 플랫폼 기업의 헤드셋은 서로 다른 경제와 권력 안에서 작동한다.
전시를 볼 때는 이 차이를 놓치기 쉽다. “경계 없는 경험”이나 “완전히 새로운 감각”이라는 문구를 발견했을 때, 비평은 그 말을 과장이라고 지우는 데서 끝나지 않는다. 어떤 과거의 관람 약속이 호출되었는지, 이번 장치에서 그 약속이 어떻게 달라졌는지, 무엇을 새로 수집하거나 통제하는지 물을 수 있다. 반복을 발견했다고 조사가 끝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그때부터 차이를 확인해야 한다.
오래된 장치를 다시 켜는 연구
후타모의 방법은 문헌 속에서만 머물지 않는다. UCLA Newsroom의 2014년 기사는 그가 마술환등과 손으로 그린 유리 슬라이드 같은 골동 광학 장치를 수집하고 공연에서 다시 작동시킨 과정을 소개한다. 17세기부터 19세기까지 마술환등 쇼는 투사 이미지를 보는 주요 형식이었고, 공연·교육·가정 오락에 걸쳐 쓰였다.
장치를 실제로 켜면 역사책의 도판에서 지워졌던 조건들이 눈에 들어온다. 빛의 밝기, 슬라이드를 바꾸는 손의 속도, 연주와 음향 효과, 관객이 앉는 거리, 진행자의 설명이 한꺼번에 경험을 만든다. 오래된 기계를 현재의 관객 앞에서 시연하는 일은 과거 화면을 복원하는 데 그치지 않는다. 이미지는 언제나 장치, 공연, 공간, 사람의 협업 속에서 나타났다는 사실을 몸으로 확인하게 한다.
미디어아트 전시도 같은 질문을 피할 수 없다. 작품 설명에 센서와 모델, 실시간 엔진의 이름만 나열하면 정작 경험을 조직하는 조건을 놓치기 쉽다. 관객이 어디에서 멈추는지, 누가 장치를 조정하는지, 지연과 오류를 작품이 숨기는지 드러내는지, 전시가 끝난 뒤 무엇이 보존되는지를 함께 기록해야 한다. 후타모의 장치 시연은 오래된 기술에 대한 향수라기보다 이런 기록법을 훈련하는 방법에 가깝다.
클라우드는 가벼워 보이지만 서버는 무겁다
토포스 연구는 전시장 밖의 디지털 언어에도 적용된다. 후타모는 「Obscured by the Cloud」에서 클라우드 컴퓨팅을 둘러싼 이미지와 은유를 분석한다. 데이터가 있는 실제 장소는 접근하기 어려운 서버 시설인데, 광고 속 클라우드는 가볍고 깨끗하며 중력을 벗어난 공간으로 그려진다. 은유는 복잡한 인프라를 이해하기 쉽게 만들지만, 동시에 전력·토지·노동·소유의 문제를 시야에서 밀어낸다.
그래서 토포스는 과거를 찾는 도구이자 현재의 인터페이스를 읽는 도구가 된다. ‘클라우드’, ‘마법 같은 자동화’, ‘경계 없는 몰입’ 같은 표현을 금지어로 만들 필요는 없다. 대신 그 표현이 무엇을 보이게 하고 무엇을 가리는지 확인해야 한다. 전시와 작품이 같은 말을 사용할 때도 마찬가지다. 비평의 대상은 단어 자체보다 단어가 관객에게 미리 건네는 역할과 기대다.
물론 반복되는 이미지만 찾아서는 충분하지 않다. 토포스 연구는 문화적 수사와 관람 약속을 잘 포착하지만, 기술의 물질적 차이나 플랫폼의 정치경제를 자동으로 설명해 주지 않는다. 오래된 약속이 돌아왔다는 사실과 오늘의 시스템이 같은 결과를 낸다는 주장은 다르다. 반복의 계보를 살필 때는 인프라, 노동, 데이터, 지역의 역사도 함께 읽어야 한다.
전시장에서 던질 네 가지 질문
후타모의 방법을 전시 현장에서 쓰려면 질문은 구체적이어야 한다.
- 이 작품이나 전시는 자신을 어떤 말로 새롭다고 소개하는가.
- 그 말은 파노라마, 마술환등, 텔레비전, 초기 인터랙티브 장치 같은 과거의 어떤 약속과 닮았는가.
- 이번 장치는 관객의 몸과 시선을 실제로 어떻게 다르게 배치하는가.
- 반복되는 수사가 가리는 비용, 노동, 데이터, 통제의 조건은 무엇인가.
사양표는 장치가 무엇을 할 수 있는지 알려 준다. 그 장치를 왜 새롭다고 느끼는지는 알려 주지 않는다. 후타모의 토포스 고고학은 모든 것이 이미 있었다고 선언하는 냉소와 거리가 멀다. 익숙한 약속과 실제 변화 사이의 거리를 재는 비평의 도구에 가깝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