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로카와 료이치의 시간 조각은 어떻게 전시되는가
쿠로카와 료이치의 《Rheo》와 《unfold》를 통해 공연의 시간과 반복 설치의 시간을 비교한다. 천체물리 데이터를 소리·영상·진동으로 옮기는 과정에서 과학적 근거와 예술적 구성을 구분하고, 오디오비주얼 작품의 전시·기록 조건을 살핀다.

커버는 글의 주제를 위해 생성한 개념 이미지이며, 작가의 실제 작품이나 전시를 촬영한 사진이 아니다.
별이 만들어지는 과정을 전시한다면 무엇을 보여 줄 수 있을까. 쿠로카와 료이치(Ryoichi Kurokawa)의 《unfold》(2016)는 천체물리 데이터를 영상과 소리, 진동으로 옮긴 설치다. 작가가 공개한 사양에는 3채널 HD 프로젝션, 6.1채널 서라운드 사운드와 촉각 트랜스듀서, 8분의 반복 재생이 적혀 있다. 우주를 보여 주는 화면 옆에 설명을 붙이는 것과는 다른 감상 조건이다. 관객은 일정한 길이로 구성된 시청각 환경 안에 들어간다.[3][4]
이 작품을 이해하려면 데이터의 내용과 함께 그것을 겪는 시간을 살펴야 한다. 방대한 현상을 8분에 담으려면 무엇을 선택하고 어떤 순서로 놓을지 결정해야 한다. 소리와 이미지가 만나는 순간, 화면이 나뉘는 방식, 몸에 전달되는 진동도 그 결정에 속한다. 데이터가 존재한다고 작품의 시간이 저절로 주어지는 것은 아니다.
베를린을 기반으로 활동하는 일본 작가 쿠로카와는 공식 소개에서 현장 녹음과 디지털로 생성한 구조를 결합해 ‘시간 조각’을 구성한다고 설명한다. 설치와 레코딩, 콘서트 작업을 오가는 실천이다.[1] 이 표현을 분위기 있는 비유로만 읽으면 정작 제작의 질문을 놓친다. 시간 조각을 다른 장소로 옮길 때 보존해야 하는 것은 무엇인가. 《Rheo》와 《unfold》의 형식 차이부터 살펴볼 만하다.
공연의 길이와 반복 설치의 길이
《Rheo》(2009)의 공식 작품 페이지는 이 작업을 오디오비주얼 콘서트로 분류한다. 세 폭의 HD 영상 프로젝션과 5.1채널 서라운드 사운드를 사용하며, 길이는 20~30분으로 제시한다.[2] 화면 수만 보면 《unfold》와 비슷하지만 공연이라는 형식, 사운드 구성과 지속 시간이 다르다. 두 작품을 모두 다채널 영상이라는 이름으로 묶으면 관객이 시간을 만나는 방식이 빠진다.
공연에서는 정해진 시작과 끝을 따라 감상하는 조건을 마련할 수 있다. 반복 설치에서는 관객이 재생 도중 들어오거나 한 주기가 끝나기 전에 나갈 수도 있다. 이것은 두 작품의 모든 전시가 실제로 어떻게 운영됐다는 주장이 아니라, 콘서트와 반복 재생이라는 공개된 형식에서 출발한 비교다. 작품을 설치할 때는 진입 시점과 체류 시간을 별도로 검토하게 된다.
반복되는 파일이 있다고 모든 관객이 같은 시간 구조를 경험하는 것은 아니다. 한 사람이 처음 본 장면은 다른 사람이 떠나기 직전에 본 장면일 수 있다. 앞선 장면의 기억을 전제로 한 전환은 중간에 들어온 관객에게 다르게 읽힌다. 시작을 기다리도록 안내할지, 자유로운 출입을 허용할지는 단순한 운영 편의에 그치지 않는다. 작품의 순서가 관객에게 전달되는 조건을 바꾼다.
이 때문에 전시를 기록할 때 대표 스틸만 남겨서는 부족하다. 《Rheo》의 콘서트 형식과 《unfold》의 반복 길이처럼 작품별 시간 정보를 함께 기록하면, 후속 전시자는 이미지의 생김새와 감상 순서를 혼동하지 않을 수 있다. 화면이 아름답게 재현됐다는 확인과 작품의 시간 관계를 보존했다는 확인은 따로 필요하다.
천체물리 데이터가 감각으로 옮겨지는 과정
FACT의 《unfold》 소개에 따르면 쿠로카와는 CEA Irfu, Paris-Saclay의 천체물리학자 Vincent Minier와 협력했다. 별과 은하의 형성·진화에 관한 데이터를 사용해 공간의 3D 표현을 만들었고, 성단과 태양과 같은 별의 형성에 대한 해석을 작품에 포함했다. FACT는 이를 소리, 이미지와 진동으로 번역한 작업으로 설명한다.[4]
여기에는 구분해야 할 두 종류의 결정이 있다. 어떤 데이터를 사용했는지, 그 자료가 어떤 현상을 다루는지는 과학적 근거의 문제다. 그중 무엇을 선택해 어느 길이로 배치하고 어떤 감각으로 표현할지는 작품 구성의 문제다. 과학적 근거가 있다고 해서 화면의 모든 색이나 음향의 모든 변화가 특정 물리량과 일대일로 대응한다고 단정할 수는 없다. 공개된 작품 설명만으로 그런 변환 규칙까지 확인되지는 않는다.
《unfold》의 사운드를 우주에서 그대로 녹음해 온 소리로 받아들이는 것도 피해야 한다. 여기서 확인되는 것은 데이터가 소리와 이미지, 진동으로 옮겨졌다는 설명이다. 관객이 듣는 결과와 원자료 사이에는 예술가의 구성 과정이 있다. 이 간격을 지우면 작품을 설명할수록 오히려 과학적 근거가 불분명해진다.
그렇다고 변환이 개입했다는 이유로 작품의 데이터가 장식이 되는 것은 아니다. 자료와 협력자의 이름을 밝히면서도 최종 결과가 예술적 해석임을 설명할 수 있다. FACT의 크레디트에는 작가의 구상·연출·작곡·프로그래밍·디자인과 함께 Hiroshi Matoba의 프로그래밍, Vincent Minier의 과학 자문, 데이터 제공처가 구분되어 있다.[4] 작품의 저작과 협업을 이해할 때 이 구분은 화려한 기술 목록보다 유용하다.
화면 바깥에 남는 작품의 일부
《unfold》에는 영상과 서라운드 사운드 외에 촉각 트랜스듀서가 포함된다.[3] 진동을 전달하는 장치가 작품 사양에 들어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온라인 영상과 현장 설치의 차이를 짐작할 수 있다. 웹의 짧은 발췌 영상은 장면과 소리를 소개하지만, 설치 공간에서 몸으로 전달되는 조건까지 그대로 가져오지는 못한다.
그래서 작품을 휴대전화로 본 경험, 헤드폰으로 발췌 영상을 들은 경험, 실제 설치를 감상한 경험을 같은 것으로 취급해서는 곤란하다. 온라인 기록이 무가치하다는 뜻은 아니다. 각 기록이 전달하는 범위를 명확히 하자는 것이다. 무엇을 볼 수 있게 했고 무엇은 생략했는지 밝히면, 기록은 현장을 대신한다는 약속 없이도 작품으로 들어가는 경로가 된다.
시간 조각이라는 표현도 이런 조건 안에서 구체적으로 읽힌다. 재생 길이는 파일의 속성이지만, 그 길이를 감각하는 방식은 공간의 배치와 관객의 위치에 영향을 받는다. 화면 사이의 간격이나 사운드가 도달하는 위치를 바꾸면 같은 재료로도 다른 관계가 생길 수 있다. 이 글에서 말하는 시간 조각의 전시 문제는 바로 그 관계를 어디까지 작품의 일부로 다룰 것인가에 있다.
다만 공식 사양만 보고 특정 관객이 어떤 감정을 느꼈다거나 모든 감각이 완전히 일치했다고 일반화하지는 않는다. 동기화된 구성을 지향하는 작품과 관객마다 다른 지각 경험은 함께 존재한다. 장치가 많거나 타이밍이 정밀하다는 사실이 감상의 질을 자동으로 보증하지도 않는다.
다시 설치할 때 확인할 것
오늘날 오디오비주얼 작업을 제작하거나 교육할 때 쿠로카와의 사례에서 가져올 수 있는 것은 특정한 화면 스타일보다 형식의 구분이다. 같은 장면이라도 공연의 일부인지, 중간 진입을 허용하는 반복 설치인지 먼저 정해야 한다. 그런 다음 영상과 음향의 관계가 어느 지점에서 달라지고, 감상자가 그 변화를 따라가는 데 무엇이 필요한지 살필 수 있다.
실무에서는 대표 영상과 별도로 재생 길이, 채널 구성, 반복 지점과 관객의 진입 방식을 적어 두는 편이 좋다. 촉각 장치처럼 온라인 기록이 전달하기 어려운 요소는 실제 설치에서 확인할 대상으로 남긴다. 이 제안은 작가가 공개한 설치 매뉴얼을 요약한 것이 아니라, 두 작품의 형식을 비교하면서 도출한 제작·기록의 기준이다.
과학 데이터를 쓰는 작업이라면 출처와 변환의 범위를 함께 설명할 필요도 있다. 어떤 관측이나 연구 자료를 사용했는지와 작가가 시간을 어떻게 편집했는지를 나누어 적으면, 관객은 과학적 사실과 예술적 구성을 각각 읽을 수 있다. 기술을 모두 설명하라는 요구가 아니다. 확인되지 않은 변환 규칙을 정밀한 과학적 재현처럼 말하지 않기 위한 최소한의 구분이다.
쿠로카와의 작품을 다시 전시한다는 것은 화면을 다시 켜는 일보다 많은 결정을 포함한다. 공개된 작품 사양은 그 결정을 시작할 근거이지, 작가와 협의할 설치 조건을 대신하는 완전한 매뉴얼은 아니다. 영상 파일을 확보한 뒤에도 공연과 반복 설치의 시간, 소리와 진동이 도달하는 범위, 관객이 들어오고 나가는 조건은 여전히 검토할 과제로 남는다.
직접 읽은 자료
- [1] Ryoichi Kurokawa, Biography.
- [2] Ryoichi Kurokawa, 《Rheo》.
- [3] Ryoichi Kurokawa, 《unfold》.
- [4] FACT, 《unfold (20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