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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ticle · 2026.07.17

기술은 하나의 세계만 만들지 않는다

육 후이의 코스모테크닉스를 통해 기술을 보편적 도구가 아니라 세계관과 윤리, 몸과 환경이 결합된 복수의 실천으로 읽고, 미디어아트와 AI가 다른 기술 세계를 만들 수 있는지 묻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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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로 다른 빛과 물질의 생태계가 연결된 코스모테크닉스 주제의 미디어아트 설치

기술은 흔히 세계 어디서나 같은 방식으로 작동하는 보편적 도구처럼 소개된다. 더 빠른 모델, 더 정밀한 센서, 더 매끄러운 인터페이스가 등장하면 사회는 한 단계 앞으로 이동한다고 말한다. 차이는 대개 성능과 가격, 보급 속도의 문제로 축소된다. 이 서사에서 기술의 방향은 이미 정해져 있고, 각 지역과 공동체는 그 선두를 따라잡거나 뒤처질 뿐이다.

홍콩 출신 철학자 육 후이(Yuk Hui)가 제안한 코스모테크닉스(Cosmotechnics)는 이 익숙한 전제를 뒤집는다. 기술은 중립적인 장비의 집합이 아니라, 세계를 이해하는 방식과 무엇이 좋은 삶인지에 대한 판단이 구체적인 제작·사용·수리·교육의 활동 속에서 결합된 것이다. 그렇다면 기술은 하나일 수 없다. 서로 다른 세계관과 윤리, 인간과 비인간의 관계가 존재하는 만큼 기술의 형태와 미래도 복수여야 한다.

이 관점은 미디어아트를 신기술의 쇼룸으로 보지 않게 한다. 작품의 핵심은 어떤 장비를 썼는지가 아니라 그 장비가 몸, 공간, 데이터, 자연, 노동, 제도와 어떤 관계를 만들었는지에 있다. 코스모테크닉스는 작품 앞에서 “얼마나 첨단적인가” 대신 “어떤 세계가 여기서 기술적으로 구성되고 있는가”라고 묻게 한다.

보편 기술이라는 착시

육 후이가 말하는 코스모스는 우주 공간만을 뜻하지 않는다. 인간과 자연, 생명과 사물, 공동체와 미래, 기억과 죽음을 어떤 관계로 이해하는지에 관한 세계 질서에 가깝다. 도덕 질서 역시 기술 바깥에서 나중에 덧붙이는 윤리 규정이 아니다. 속도와 효율, 예측과 통제, 돌봄과 수리, 설명과 책임 가운데 무엇을 우선하는지가 이미 설계와 운영에 들어 있다.

예컨대 하나의 플랫폼은 로그인 방식, 추천 순서, 알림 주기, 데이터 보존 정책을 통해 사용자의 시간을 조직한다. 생성형 AI는 학습 데이터, 언어의 우선순위, 안전 규칙, 접근 비용, 입력창의 형식을 통해 무엇을 정상적인 질문과 답으로 볼지 정한다. 이런 선택은 단순한 기능 목록이 아니다. 어떤 인간상을 기본 사용자로 삼고, 어떤 지식을 주변으로 밀어내며, 어떤 미래를 효율적이라고 판단하는지를 담은 기술적 세계관이다.

육 후이의 문제 제기는 과거의 전통으로 돌아가자는 요청과도 다르다. 그의 저서 《The Question Concerning Technology in China》가 비판하는 것은 특정한 산업 기술을 기술 일반의 유일한 역사로 확대하는 습관이다. 중요한 것은 서구 기술을 동양 기술로 교체하는 일이 아니라, 하나의 발전 경로가 모든 사회의 필연이라는 믿음을 멈추는 일이다. 코스모테크닉스는 기술을 반대하지 않는다. 기술의 미래가 왜 단수형이어야 하는지 묻는다.

작품은 장비가 아니라 기술 세계다

미디어아트는 이 질문을 추상적인 철학에서 감각의 문제로 옮길 수 있다. 센서 기반 설치를 생각해 보자. 관객의 움직임을 즉시 추적해 화려한 영상을 반환하는 작품은 반응 속도만으로 평가할 수 없다. 관객을 자유로운 참여자로 대하는지, 측정 가능한 데이터 주체로 바꾸는지, 몸의 차이를 허용하는지, 모든 움직임을 같은 표준으로 정규화하는지에 따라 전혀 다른 기술 세계가 만들어진다.

AI 이미지 작업도 마찬가지다. 지역의 신화나 전통 문양을 출력에 넣었다고 해서 곧 다른 코스모테크닉스가 되는 것은 아니다. 데이터의 출처와 언어, 저작권과 노동, 모델 접근권, 전시장의 에너지와 장비, 관객에게 주어진 선택권이 그대로라면 지역성은 표면 장식에 머물 수 있다. 반대로 동일한 범용 모델을 사용하더라도 자료를 모으는 동의 절차, 공동체가 결과를 해석하고 거부할 권리, 오류를 기록하고 고치는 방식이 달라지면 기술의 작동 질서도 달라진다.

《Art and Cosmotechnics》는 AI와 로보틱스의 시대에 예술의 경험이 기술을 다시 생각하는 데 무엇을 기여할 수 있는지 묻는다. 이 질문에서 예술은 완성된 기술에 이미지를 입히는 장식이 아니다. 기술이 전제한 몸과 자연, 시간과 공동체의 관계를 잠시 멈춰 세우고 다른 배치를 시험하는 장소다. 좋은 미디어아트는 최신 장비를 가장 능숙하게 시연하는 작품이 아니라, 그 장비가 당연하다고 여긴 관계를 다시 설계하게 만드는 작품일 수 있다.

기술 다양성은 브랜드 선택보다 깊다

코스모테크닉스의 실천적 방향은 기술 다양성(technodiversity)으로 이어진다. 이는 여러 회사의 제품 가운데 하나를 고르는 소비자 선택과 다르다. 서로 다른 언어와 시간성, 수리 문화, 데이터 거버넌스, 공동체 책임이 실제 기술 체계 안에서 공존할 수 있어야 한다는 요구다.

오늘의 AI와 플랫폼 환경은 겉으로는 선택지가 넘치지만 깊은 층위에서는 비슷한 질서로 수렴한다. 대화형 입력창, 구독 모델, 클라우드 의존, 참여를 늘리는 추천, 영어권 중심의 대규모 데이터, 규모 확장을 성능의 기준으로 삼는 문화가 반복된다. 모델 이름과 서비스 색상은 달라도 사용자의 행동과 창작 과정을 조직하는 방식은 놀랄 만큼 닮아 있다. 다양성이 스타일 프리셋의 차이로만 남을 때, 기술의 세계관은 오히려 더 단단하게 단일화된다.

미디어아트가 기술 다양성을 실험하려면 결과 이미지보다 운영 구조를 함께 다뤄야 한다. 누가 데이터를 모으고 이름 붙였는가. 작품이 고장 났을 때 누가 수리하며 그 지식은 어디에 남는가. 관객은 참여를 거부할 수 있는가. 네트워크가 끊겨도 작품은 다른 형태로 지속될 수 있는가. 지역의 언어와 기억은 번역 가능한 소재로만 소비되는가, 아니면 인터페이스와 권한 구조를 실제로 바꾸는가. 이런 질문은 작품의 기술적 조건을 작품 바깥의 부속 정보가 아니라 미학의 일부로 만든다.

지역성은 본질이 아니라 배치다

코스모테크닉스는 한국과 동아시아의 미디어아트를 서구 뉴미디어의 늦은 변형으로만 읽지 않게 하는 유용한 틀이다. 빠른 산업화와 고밀도 네트워크, 의례와 공동체의 기억, 도시 플랫폼의 생활 리듬이 작품 속 장치와 만나며 독특한 기술적 관계를 만들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가능성을 곧바로 “한국적 기술”이라는 고정된 본질로 부르면 개념은 위험해진다.

지역성은 민족적 장식이나 신비한 정신이 아니라 구체적인 배치로 증명되어야 한다. 어떤 언어가 인터페이스의 기본값인지, 어떤 몸이 공간에 접근할 수 있는지, 자연과 비인간을 자원으로만 다루는지, 공동체가 기록과 데이터에 어떤 권리를 갖는지, 전시 이후 장비와 지식이 어디로 돌아가는지를 확인해야 한다. 코스모스라는 말이 케이블, 전력, 광물, 노동, 저작권, 유지보수의 조건을 가린다면 그것은 대안적 기술철학이 아니라 분위기 있는 수사에 그친다.

그래서 코스모테크닉스의 강점은 정답을 제공하는 데 있지 않다. 그것은 보편 기술이라는 이름 아래 지워진 선택들을 다시 보이게 한다. 기술이 이미 세계관과 윤리를 구현한다면, 설계와 제작, 전시와 운영은 모두 어떤 세계를 지지할지 결정하는 일이 된다.

끝내 남는 판단: 다른 기술 세계가 실제로 가능한가

한 작품이 다른 기술 세계를 제안하는지는 낯선 시각 효과만으로 판단할 수 없다. 관객의 위치, 데이터의 권리, 비인간과 환경의 관계, 고장과 수리의 책임까지 이전과 다르게 조직할 때 그 제안은 비로소 구체적이 된다. 기술 다양성은 여러 미래를 상상하는 문장이 아니라, 다른 미래가 작동하도록 만드는 운영 조건이다.

미디어아트가 우리에게 남길 가장 중요한 질문도 여기에 있다. 이 작품은 새로운 기술을 보여 주는가, 아니면 기술이 세계를 만드는 방식 자체를 새롭게 만들고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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