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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ticle 2026년 5월 29일

자유라는 인터페이스 뒤에서 습관은 어떻게 훈련되는가

Wendy Hui Kyong Chun의 소프트웨어, 습관, 업데이트, 데이터 차별 이론을 통해 플랫폼과 AI 시대의 미디어아트를 다시 읽는 공개 에세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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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상적인 소프트웨어 창, 네트워크 선, 데이터 군집이 겹친 텍스트 없는 미디어아트 커버

디지털 미디어는 자주 자유의 언어로 자신을 설명한다. 더 많이 연결하고, 더 빨리 표현하고, 더 정교하게 개인화하며, 더 쉽게 창작할 수 있다는 약속이 화면 곳곳에 배치된다. 그러나 Wendy Hui Kyong Chun의 이론이 날카로운 이유는 바로 그 자유의 표면을 의심하기 때문이다. 그는 네트워크와 소프트웨어가 자유를 억압한다고 단순히 말하지 않는다. 오히려 자유의 감각 자체가 어떻게 반복 접속, 업데이트, 개인화, 데이터 분류를 통해 통치의 방식이 되는지를 묻는다.

Chun을 미디어아트의 맥락에서 읽는 일은 특정 이론가의 이름을 작품 해설에 덧붙이는 일이 아니다. 그것은 코드 기반 예술, 플랫폼 전유 작업, AI 이미지, 데이터 시각화, 인터랙티브 설치를 결과물의 아름다움만이 아니라 관객의 습관을 조직하는 장치로 다시 읽는 일이다. 화면은 보여 주는 표면이면서 동시에 행동을 훈련하는 표면이다. 이때 인터페이스는 중립적 통로가 아니라 반복을 설계하는 미학적·정치적 환경이 된다.

소프트웨어는 실행되기 전에 상상력을 만든다

Chun의 작업에서 소프트웨어는 단순한 기술 객체가 아니다. 프로그램, 코드, 알고리즘, 업데이트 같은 말은 컴퓨터 내부에서만 작동하지 않는다. 그것들은 사회를 이해하는 은유가 되고, 인간의 행동을 예측 가능한 절차로 바꾸는 사고방식이 된다. 문제를 해결한다는 말은 어느새 문제를 프로그래밍 가능한 형태로 변환한다는 뜻에 가까워지고, 기억한다는 말은 저장과 호출과 새로고침의 모델로 이해된다.

이 관점은 미디어아트에 중요하다. 소프트웨어 기반 작품은 더 이상 “컴퓨터를 사용한 예술”이라는 기술 분류만으로 설명되지 않는다. 작품이 어떤 데이터를 받아들이고, 어떤 입력을 정상적인 행동으로 간주하며, 어떤 반복을 관객에게 요구하는지를 보아야 한다. 관객이 클릭하고, 스크롤하고, 몸을 움직이고, 센서 앞에서 반응하는 방식은 작품의 외부가 아니라 작품이 구성하는 소프트웨어적 세계의 일부다.

그래서 Chun은 소프트웨어를 보이지 않는 배경에서 끌어낸다. 코드가 실행 결과를 만든다는 말보다 더 중요한 것은 코드적 사고가 세계를 절차, 분류, 반복, 업데이트의 형태로 상상하게 만든다는 점이다. 미디어아트가 이 조건을 드러낼 때, 그것은 새로운 기술의 시연을 넘어 동시대 감각의 훈련 방식을 비평하는 장이 된다.

자유와 통제는 반대편에 있지 않다

초기 네트워크 문화는 연결을 해방의 이미지로 제시했다. 누구나 말할 수 있고, 누구나 접속할 수 있으며, 누구나 자신의 정체성을 새롭게 구성할 수 있다는 감각은 인터넷의 강력한 문화적 신화였다. Chun은 이 신화를 그대로 받아들이지 않는다. 네트워크가 자유를 약속하는 바로 그 구조 안에서 감시, 추적, 프로토콜, 접근 권한, 표준화된 행동이 함께 자란다는 점을 보여 준다.

여기서 핵심은 자유와 통제가 서로의 반대말이 아니라는 통찰이다. 사용자는 선택지가 많아졌다고 느끼지만, 그 선택지는 인터페이스가 마련한 범위 안에서만 움직인다. 플랫폼은 표현의 자유를 제공하는 동시에 그 표현을 측정 가능한 반응, 추천 가능한 신호, 광고 가능한 관심으로 변환한다. 참여는 곧 데이터가 되고, 데이터는 다시 사용자의 다음 행동을 예측하는 구조로 돌아온다.

미디어아트는 이 역설을 감각적으로 보여 줄 수 있다. 관객 참여형 설치가 자유로운 상호작용처럼 보일 때, 실제로는 어떤 움직임만 인식되고 어떤 반응은 무시되는가. AI 이미지 생성이 무한한 상상력처럼 보일 때, 실제로는 어떤 프롬프트, 어떤 데이터셋, 어떤 안전 규칙, 어떤 스타일 기본값이 선택지를 좁히는가. Chun의 이론은 작품을 “참여적”이라고 부르는 순간에도 그 참여가 어떻게 형식화되는지 묻게 만든다.

업데이트는 새로움보다 습관을 유지한다

Chun의 중요한 문제의식 중 하나는 “계속 새로워지는 미디어”가 실제로는 어떻게 동일한 습관을 유지하는가에 있다. 플랫폼은 업데이트를 통해 변화와 개선을 약속한다. 인터페이스는 조금씩 바뀌고, 기능은 추가되며, 피드는 매번 새 콘텐츠로 채워진다. 하지만 그 변화의 목표는 사용자가 떠나는 것이 아니라 더 안정적으로 머무는 것이다.

이 관점에서 업데이트는 단순한 기술 개선이 아니라 통치의 시간 형식이다. 사용자는 새로움을 경험하지만, 시스템은 반복 접속과 예측 가능한 행동을 강화한다. 알림, 추천, 자동 재생, 기본 설정, 저장된 취향, 맞춤형 피드는 모두 사용자가 스스로 선택하고 있다고 느끼게 하면서도 특정한 리듬으로 되돌아오게 만든다. 새로움은 습관을 깨뜨리는 힘이 아니라 습관을 갱신하는 장치가 된다.

동시대 미디어아트와 AI 창작 환경에서도 이 문제는 직접적이다. 생성형 AI 도구는 매번 다른 결과를 내놓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용자는 점점 도구가 잘 받아들이는 문장, 잘 나오는 스타일, 안전하게 통과되는 표현, 빠르게 승인되는 워크플로에 적응한다. 창작의 자유는 확대되는 동시에 도구 친화적인 습관으로 재구성된다. 좋은 작품은 이 습관을 숨기지 않고, 오히려 관객이 자신이 길들여지는 방식을 느끼게 한다.

데이터 차별은 오류가 아니라 분류의 정치다

Chun의 후기 작업이 AI 시대에 특히 중요한 이유는 데이터 기반 분류를 기술적 오류보다 더 깊은 정치적 문제로 보기 때문이다. 데이터 시스템은 사람들을 유사성, 근접성, 상관관계에 따라 묶는다. 추천은 취향을 발견하는 것처럼 보이고, 개인화는 사용자를 이해하는 것처럼 보이며, 예측은 효율을 높이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이 과정은 기존의 사회적 차이를 새로운 객관성의 이름으로 고정할 수 있다.

이 점은 AI 비평과 미디어아트 모두에 결정적이다. 데이터셋, 얼굴 인식, 감정 분석, 검색 랭킹, 추천 알고리즘을 다루는 작업은 단순히 “편향이 있다”는 선언에 머물러서는 부족하다. 어떤 유사성이 만들어지고, 어떤 차이가 지워지며, 어떤 집단이 위험·취향·능력·정상성의 범주로 다시 묶이는지를 보아야 한다. 차별은 시스템 바깥에서 들어온 예외가 아니라 분류 체계 자체의 작동 방식일 수 있다.

미디어아트가 데이터의 아름다운 패턴을 보여 줄 때도 같은 질문이 필요하다. 시각화가 매혹적일수록 그 패턴이 어떤 수집 조건과 분류 기준 위에 있는지 더 분명히 물어야 한다. Chun은 데이터 미학을 윤리 체크리스트로 축소하지 않고, 감각적 표면과 계산적 분류가 만나는 지점에서 권력이 어떻게 자연스러워지는지 보게 한다.

남는 질문: 더 자유로운 도구보다 덜 순종적인 습관

Chun을 오늘 읽는다는 것은 디지털 기술을 거부하자는 뜻이 아니다. 오히려 그의 이론은 우리가 이미 기술 안에서 생각하고 만들고 관계 맺는다는 사실을 더 정직하게 보게 한다. 중요한 질문은 “이 도구가 자유로운가”가 아니라 “이 도구가 어떤 자유의 감각을 만들고, 그 감각을 통해 어떤 반복을 요구하는가”다.

미디어아트의 과제도 여기에 있다. 더 몰입적인 화면, 더 반응적인 센서, 더 똑똑한 AI가 곧 더 좋은 예술을 보장하지 않는다. 좋은 작업은 관객에게 선택지를 많이 주는 것처럼 보이는 데서 끝나지 않고, 선택지가 만들어지는 조건 자체를 느끼게 해야 한다. 자유라는 인터페이스 뒤에서 습관이 어떻게 훈련되는지 볼 수 있을 때, 우리는 비로소 소프트웨어를 사용하는 사람이 아니라 소프트웨어가 만드는 세계를 비평하는 사람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