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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edia Art Article · 2026.07.26

데이터셋을 만드는 손까지 작품이 된다

안나 리들러의 Myriad (Tulips), Mosaic Virus, Fall of the House of Usher를 통해 AI 이미지 뒤에 감춰진 데이터셋 제작의 노동과 판단을 살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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튜립 사진 데이터셋 제작을 재해석한 개념 이미지

기계가 이미지를 만들기 전에, 누군가는 이미 세계를 잘라 이름 붙이고 분류했다. 어떤 장면을 모을지, 무엇을 같은 부류로 묶을지, 모호한 사례를 버리거나 남길지 결정하는 일이다. 생성형 AI의 화면은 이 과정을 빠르게 지워 버린다. 결과는 순식간에 나타나지만, 그 결과를 가능하게 한 데이터의 시간은 좀처럼 보이지 않는다.

런던에서 활동하는 작가이자 글쓴이 Anna Ridler는 데이터를 만드는 데 든 시간을 작품 안에 공개한다. Ridler는 2017년부터 기계학습을 예술 재료로 다뤘고, 직접 만든 아카이브와 데이터셋으로 모델을 학습해 왔다. 그에게 데이터셋은 준비물이 아니라 무엇을 보고 무엇을 지울지 결정한 흔적이다. 여러 작업에서 데이터셋 자체를 설치로 전시하고 생성 결과와 연결한다.

튤립 사진을 분류하는 시간이 작품이 될 때

《Myriad (Tulips)》(2018)는 수천 장의 튤립 사진을 손으로 라벨링한 설치다. 사진을 찍고 형태와 색을 확인해 라벨을 붙이는 시간이 벽 전체에 드러난다. 보통 기계학습 프로젝트에서 데이터셋은 모델 뒤로 사라진다. Ridler는 사진과 라벨링 노동을 벽면에 펼쳐 놓는다.

이 선택은 AI가 스스로 세계를 배운다는 익숙한 인상을 흔든다. 모델이 보는 튤립은 자연에 있는 모든 튤립이 아니다. 작가가 촬영하고 고르고 이름 붙인 튤립의 집합이다. 무엇이 충분히 대표적인지, 어떤 차이를 하나의 범주 안에 넣을지 판단한 사람이 있다. 작품은 그 판단을 오류 없는 정답처럼 내세우지 않는다. 대신 데이터가 만들어지는 장면을 관객이 볼 수 있게 한다.

수작업 데이터셋은 자동으로 공정하거나 중립적인 데이터가 되지 않는다. 작은 아카이브는 산업 규모의 학습 데이터를 대체하기 어렵고, 한 사람이 만든 분류 역시 특정한 시선에 묶인다. 다만 누가 무엇을 골랐는지 드러난다. Ridler의 작업에서 투명성은 편향이 사라졌다는 선언이 아니라, 편향과 책임을 추적할 수 있는 조건에 가깝다.

꽃의 가격이 생성 이미지를 흔든다

《Mosaic Virus 2018》(2018)는 《Myriad (Tulips)》의 사진을 학습한 GAN으로 만든 19분 44초짜리 단일 화면 영상이다. 격자 속 튤립의 색과 형태, 움직임은 비트코인 가격에 따라 달라진다. 2019년의 3면 영상 설치 《Mosaic Virus 2019》는 각 화면에 튤립 한 송이를 보여 주며 같은 가격 연동 원리를 이어 간다. 17세기 네덜란드 튤립 투기의 기억과 오늘의 암호화폐 시장이 화면에 겹친다.

여기서 꽃은 보기 좋은 결과물로 끝나지 않는다. 희소성과 가격, 욕망이 이미지를 어떻게 바꾸는지 보여 주는 지표가 된다. 실제 튤립에 생기는 모자이크 바이러스는 줄무늬를 만들지만 식물을 약하게 한다. 작품은 이 생물학적 불안정성과 금융 시장의 변동, 기계학습 이미지의 흔들림을 나란히 놓는다. 이 세 현상을 하나의 원인으로 묶지 않는다. 대신 가치가 이미지의 형태를 조직하는 방식을 비교하게 만든다.

Ridler가 만든 데이터셋은 화면 뒤로 완전히 사라지지 않는다. 관객은 생성된 튤립을 보면서 그 전에 촬영되고 분류된 수천 장의 사진을 함께 떠올릴 수 있다. 결과 이미지와 제작 조건 사이의 거리가 짧아진다. 모델이 얼마나 낯선 이미지를 만들었는지만으로 AI 예술을 평가하기에는 부족하다. 어떤 자료와 노동, 가격 체계가 그 이미지를 움직였는지도 보게 된다.

잉크 드로잉과 기계 기억의 왕복

《Fall of the House of Usher I》(2017)은 12분짜리 단채널 영상 설치이고, 《Fall of the House of Usher II》(2017)는 Watson과 Webber의 1929년 무성영화를 바탕으로 만든 200여 점의 잉크 드로잉 데이터셋이다. 드로잉을 일련의 상호 연결된 GAN으로 처리해 만든 이미지가 영상과 다음 학습 세트의 재료가 되었다.

이 작업에는 원작 소설, 무성영화, 손그림, 기계가 생성한 이미지가 차례로 포개진다. 복제는 원본을 매끈하게 보존하지 않는다. 장면은 기억처럼 나타났다 흐려지고, 먹의 번짐과 초기 GAN의 불안정한 질감이 서로 닮아 간다. Ridler는 손과 기계를 서로 대립하는 두 저자로 세우기보다, 한쪽의 결과가 다른 쪽의 입력이 되는 왕복 구조를 만든다.

이 사례는 데이터셋 제작을 단순한 전처리로 부르기 어려운 이유를 보여 준다. 200점이 넘는 드로잉에는 시간을 들여 원본을 보고, 다시 그리고, 차이를 남긴 과정이 들어 있다. 모델은 그 과정을 단축하지 않는다. 오히려 데이터셋을 만드는 데 들어간 노동과 해석을 다른 형태로 증폭한다.

남는 판단

Anna Ridler의 작업은 산업용 AI의 데이터 문제를 해결하지 않는다. 직접 만든 소규모 데이터셋은 출처와 선택 과정을 보여 주는 데 유리하지만 규모와 대표성에는 한계가 있다. 대신 관객이 생성 이미지 뒤의 선택과 노동을 외면하기 어렵게 배치한다.

AI 이미지 앞에서 묻는 질문도 달라져야 한다. 화면에 무엇이 생성되었는지만 볼 것인가, 아니면 그 화면이 어떤 자료를 고르고 얼마의 시간을 들여 만들어졌는지까지 함께 볼 것인가.

참고한 자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