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마트홈의 목소리 뒤에는 누가 앉아 있는가
로런 리 매카시의 《SOMEONE》은 스마트홈의 매끄러운 자동화 뒤에 숨은 인간의 노동, 돌봄, 감시를 관객이 직접 수행하게 만든다.

커버는 작품의 기록 사진이 아니라, GPT Image 2로 생성한 개념 일러스트레이션이다.
스마트 스피커에 말을 걸면 대답은 거의 곧바로 돌아온다. 조명이 켜지고 음악이 흐르며 온도가 조절된다. 이 매끄러운 반응은 집이 스스로 거주자를 이해하는 듯한 인상을 준다. 그러나 자동화된 목소리 뒤에는 요청을 분류하는 사람, 기기를 설치하고 유지하는 사람, 예외 상황을 처리하는 사람이 있다. 인터페이스는 그 노동을 좀처럼 보여 주지 않는다.
로런 리 매카시(Lauren Lee McCarthy)의 《SOMEONE》(2019)은 그 뒤편을 집 안으로 다시 불러들인다. 네 곳의 집과 한 갤러리를 네트워크로 연결한 이 작업에서 인공지능의 역할은 기계가 아니라 다른 사람이 맡는다. 관객은 화면 앞에 앉아 누군가의 호출을 듣고, 그 집의 조명과 기기를 원격으로 움직인다. 편리함을 감상하러 온 사람이 잠시 편리함의 노동자가 되는 셈이다.
자동화의 빈자리를 사람이 채울 때
작가의 작품 페이지에 따르면, 매카시는 2019년 두 달 동안 미국 네 곳의 집에 카메라, 마이크, 조명과 여러 가전기기를 포함한 맞춤형 장치를 설치했다. 뉴욕의 205 Hudson Gallery에는 네 대의 컴퓨터가 놓인 제어실이 마련됐다. 집에 있는 참여자가 “Someone”이라고 부르면 갤러리의 관객이 응답하고, 노트북으로 집 안을 살피며 연결된 기기를 조작했다.
인간이 기계 흉내를 낸다는 설정만 보면 농담처럼 보인다. 실제로 관객이 맡는 일은 훨씬 까다롭다. 평소 스마트홈은 명령과 실행 사이의 거리를 지우지만, 《SOMEONE》은 그 사이에 타인의 시간과 판단을 다시 놓는다. 요청은 늘 명확하지 않고, 돌봄은 명령어 목록으로 끝나지 않는다. 관객은 무엇을 해도 되는지, 얼마나 오래 지켜봐도 되는지, 언제 응답하지 않는 편이 나은지 스스로 판단해야 한다. 자동화가 감춰 온 모호함이 이때 드러난다.
갤러리의 제어석을 보고 나면 스마트홈의 ‘단순함’은 달리 보인다. 한쪽의 편안함은 누군가의 대기와 주의력에 기대고 있다. “알아서 해 주는 집”이라는 문장은 누가 계속 보고 듣고 있어야 성립하는지 묻게 된다.
돌봄과 감시는 같은 센서를 쓴다
집은 사적인 공간인 동시에 돌봄이 가장 자주 일어나는 장소다. 불을 켜 주고, 문이 잠겼는지 확인하고, 몸이 불편한 사람의 호출에 응답하는 행동은 돌봄으로 읽힌다. 그러나 같은 행동을 가능하게 하는 카메라와 마이크는 감시 장치이기도 하다. 차이는 센서의 종류보다 누가 보고 있는지, 어떤 동의 아래 얼마나 오래 보는지, 기록이 어디로 이동하는지에 달려 있다.
Ars Electronica의 작품 소개는 《SOMEONE》을 친밀함과 사생활, 편리함과 행위 주체성 사이의 긴장을 다루는 작업으로 설명한다. 이 긴장은 어느 한쪽을 선택하면 사라지는 문제가 아니다. 누군가를 보살피려면 상황을 알아야 하지만, 모든 상황을 계속 수집하는 시스템은 돌봄의 이름으로 통제를 넓힐 수 있다. 매카시는 이 딜레마를 설명문으로 정리하는 대신, 관객이 타인의 집을 직접 보고 움직이게 만든다.
그래서 참여는 편안하지 않다. 관객은 도움을 주는 동시에 침입자가 될 수 있다. 집의 참여자도 서비스를 받는 사용자이면서 공연의 조건을 함께 만드는 사람이다. 작품은 선한 의도를 면죄부로 삼지 않는다. 누가 접근 권한을 갖는지, 그 권한을 언제 거둘 수 있는지가 돌봄의 질을 결정한다는 사실을 남긴다.
관객이 인프라가 되는 전시
Whitney Museum의 소장 기록은 이 작품을 네 채널의 컬러·사운드 비디오 설치로 분류한다. 오늘 전시장에서 만나는 것은 2019년의 원격 퍼포먼스를 기록한 영상과 제어 환경이다. 여기서 기록은 사건을 단순히 재생하는 자료가 아니다. 네 화면은 여러 집을 동시에 지켜보던 관객의 시선을 전시장에 다시 펼쳐 놓는다.
《SOMEONE》에서 관객 참여는 버튼을 눌러 효과를 발생시키는 장치가 아니다. 관객 자신이 서비스의 일부가 된다. 이 전환은 자동화를 “사람이 사라진 기술”로 보는 습관을 흔든다. 사람은 사라지지 않았다. 다만 콜센터, 데이터 라벨링, 콘텐츠 검수, 기기 유지보수처럼 인터페이스 바깥으로 밀려났을 뿐이다. 작품은 그 자리를 갤러리 한가운데에 놓아 자동화가 사실은 노동을 재배치하는 방식임을 보여 준다.
한국의 미디어아트 전시가 스마트시티, 돌봄 로봇, 인공지능 안내 시스템을 다룰 때도 기술의 반응 속도만 보여 주면 충분하지 않다. 누가 호출을 받는지, 데이터와 권한이 어디로 이동하는지, 사용자가 연결을 끊을 수 있는지를 전시 형식 안에서 함께 드러내야 한다. 《SOMEONE》은 전시가 장치의 성능보다 관계를 얼마나 선명하게 보여 주는지 따져 보게 한다.
자동화는 종종 사람이 없어지는 장면으로 그려진다. 매카시의 작업은 반대편을 보여 준다. 사람은 여전히 그곳에 있으며, 다만 보이지 않는 자리에서 기다리고 있다. 미디어아트는 그 사람을 영웅으로 만들거나 기계를 악역으로 세울 필요가 없다. 편리함이 누구의 시간과 시선을 사용하고 있는지 관객이 외면할 수 없는 형태로 배치하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