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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edia Art Article · 2026.08.18

보이지 않는 입자가 전시장을 움직일 때

김윤철의 《GYRE》를 따라 뮤온 감지 신호가 유체와 조각, 전시장 전체의 리듬으로 번지는 과정을 살피고, 과학이 미디어아트의 설명 소재가 아니라 조형 조건이 되는 순간을 읽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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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두운 전시장에 유리관과 유체의 흐름, 미세한 빛 신호가 신경망처럼 이어진 추상적 장면

전시장 어딘가에서 유리관 하나가 번쩍인다. 그 빛은 미리 짜 둔 영상의 한 프레임이 아니다. 작품이 뮤온 입자를 감지했다는 신호다. 곧 다른 조각이 움직이기 시작한다. 보이지 않는 입자의 사건이 빛으로 바뀌고, 다시 운동으로 전달되면서 전시장 전체에 하나의 리듬이 생긴다.

김윤철이 2022년 제59회 베니스 비엔날레 한국관에 선보인 《GYRE》는 이런 연결을 작품의 중심에 두었다. 한국관 공식 기록에 따르면 전시는 다섯 점의 키네틱 설치와 장소 특정적 벽 드로잉으로 구성됐고, 작품들은 눈에 보이는 관이나 무선 신호로 서로 얽혔다. 각 조각을 따로 볼 수도 있지만, 핵심은 한 작품의 사건이 다른 작품의 상태를 바꾸는 순간이다.

화려한 장치만 보면 이 전시를 거대한 과학 조각이나 기술적 스펙터클로 부르기 쉽다. 그러나 《GYRE》의 질문은 장비의 새로움보다 구체적이다. 인간이 직접 느끼기 어려운 물질 사건을 어떤 감각의 관계로 옮길 것인가. 그 과정에서 조각은 단단한 오브제가 아니라 신호를 받고 내보내는 살아 있는 관계가 될 수 있는가.

보이지 않는 입자는 이미지가 아니라 신호가 된다

《Argos – the Swollen Suns》는 수백 개의 유리관과 Geiger-Müller tube, 마이크로컨트롤러로 이루어진 설치다. 김윤철의 공식 작품 페이지는 이 작업을 2022년작으로 기록하며 재료와 크기, 한국관 전시 이력을 밝힌다. 한국관의 설명은 작품이 지각하기 어려운 뮤온 입자를 감지해 유리관을 빛나게 하고, 그 신호가 《Chroma V》의 움직임을 촉발한다고 덧붙인다.

여기서 감지는 곧바로 재현이 되지 않는다. 검출된 입자는 그래프나 수치로 정리되어 관객에게 설명되지 않는다. 대신 빛의 점멸과 조각의 맥동으로 변환된다. 과학적 측정값을 읽기 쉬운 이미지로 바꾸지 않고, 측정 자체가 다른 물질을 움직이게 한다. 관객은 뮤온의 모양이 아니라 뮤온이 남긴 작동의 흔적을 만난다.

이 차이는 센서 기반 미디어아트를 판단할 때 중요하다. 센서를 설치했다는 사실만으로 작품이 되지는 않는다. 입력값이 화면의 색을 바꾸는 데 그치는지, 아니면 작품의 시간과 공간, 재료 사이의 관계까지 바꾸는지 살펴야 한다. 《Argos》의 신호는 자기 안에서 끝나지 않고 다른 조각으로 건너간다. 감지는 작품을 설명하는 보조 장치가 아니라 전시의 다음 상태를 여는 사건이 된다.

전시는 조각의 집합이 아니라 신경계가 된다

한국관 한가운데 놓인 《Chroma V》는 《Argos》의 신호를 받아 맥동하고 호흡한다. 공식 전시 설명은 이 길게 이어진 조각을 서로 다른 신체 부위를 연결하는 중추신경에 비유한다. 작품 페이지에 적힌 재료는 acrylic, aluminum, polymer, LED, motor, microcontroller다. 단단한 구조와 빛, 제어 장치가 결합하지만, 관객이 마주하는 것은 부품 목록이 아니라 신호가 지나간 뒤 달라지는 몸의 상태다.

이 구조에서 《GYRE》의 전시장은 작품을 담는 빈 상자가 아니라 작품 사이의 전달을 조절하는 몸이 된다. 《Argos》가 감각기관이라면 《Chroma V》는 신호를 퍼뜨리는 신경에 가깝다. 다른 유체 조각들은 이 흐름에 저마다 다른 점성과 속도, 반사로 응답한다. 작품의 경계는 받침대나 캡션에서 끝나지 않고 신호가 닿는 범위까지 넓어진다.

그렇다고 전시 전체를 하나의 매끄러운 유기체로만 볼 수는 없다. 신경계라는 비유는 연결을 잘 보여 주지만, 실제 작품은 서로 다른 재료와 장치가 가진 저항을 지우지 않는다. 액체는 섞이지 않고, 관은 흐름을 제한하며, 모터는 정해진 힘과 속도로만 움직인다. 센서는 모든 입자를 포착하지 못한다. 연결은 완전한 통합이 아니라, 각 재료의 한계가 드러나는 전달 과정이다.

이 지점에서 김윤철의 작업은 네트워크를 선과 노드의 추상도로 그리는 방식과 달라진다. 연결은 유리관의 두께, 액체의 밀도, 빛의 파장, 모터의 지연 같은 물질적 조건을 가진다. 신호가 전달된다는 사실보다 어떤 몸을 거치면서 늦어지고 굴절되며 다른 운동으로 바뀌는지가 더 중요해진다.

과학은 설명 소재가 아니라 조형 조건이 된다

김윤철은 자신의 작업을 TransMatter, 곧 matter in transit/ion을 탐구하는 실천으로 소개한다. 작가의 공식 소개에는 설치, 드로잉, 사운드, 텍스트와 전자음악을 가로지르며 수학, 과학, 기술, 음악, 철학, 시, 우주론을 함께 다룬다고 적혀 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과학 지식을 예술적으로 포장하는 일이 아니다. 서로 다른 지식과 물질 상태를 작품 안에서 실제로 만나게 하는 구성이다.

《La Poussière de Soleils》에서는 김윤철이 만든 vermiculite 기반 재료가 특수 렌즈를 통해서만 색채의 변화로 드러난다. 《Flare》에서는 서로 섞이지 않는 두 투명 액체가 밀봉된 채 회전하며 금속처럼 번들거리는 ‘젖은 불꽃’의 상태를 만든다. 《Impulse》는 베니스에서 가져온 바닷물을 얽힌 관 속으로 순환시켰다. 각각의 작품은 우주, 유체, 빛을 이야기하지만, 그 개념은 설명문에만 머물지 않고 재료가 움직이는 방식으로 구현된다.

따라서 작품 앞에서 모든 과학 원리를 이해해야만 감상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관객에게 먼저 다가오는 것은 속도의 차이, 빛이 튀는 순간, 액체가 버티거나 흘러가는 모습이다. 과학은 정답을 제공하는 해설이 아니라 관객의 감각을 평소와 다르게 놓는 조형 조건이 된다. 알지 못하는 현상을 곧바로 친숙한 이미지로 환원하지 않고 낯선 상태에 조금 더 오래 머물게 한다.

이 접근은 아트-사이언스 작업이 흔히 빠지는 두 함정을 비껴간다. 과학을 권위 있는 장식으로 쓰거나 복잡한 현상을 교육용 시각화로 단순화하지 않는다. 《GYRE》에서는 측정과 제어가 분명히 작동하지만, 작품은 하나의 교훈으로 닫히지 않는다. 입자와 유체, 빛과 기계가 서로의 조건을 바꾸는 동안 해석도 달라진다.

한국 미디어아트를 스크린 밖에서 읽기

김윤철의 작업은 한국 미디어아트를 비디오와 디지털 화면의 계보만으로 설명하기 어렵게 만든다. 이 전시에서 핵심적인 미디어는 스크린이 아니라 검출기, 유리관, 액체, 모터, 마이크로컨트롤러, 그리고 그 사이를 이동하는 신호다. 디지털 제어는 사라지지 않지만 최종 이미지를 앞세우지 않는다. 계산은 물질이 움직일 조건을 만들고, 관객은 그 결과를 공간의 변화로 경험한다.

AI 이미지와 대형 프로젝션이 미디어아트의 대표 얼굴이 된 지금, 이 차이는 더 선명해진다. 화면의 해상도나 생성 모델의 성능만으로 기술과 예술의 관계를 판단하면, 기술이 재료의 시간과 전시장의 감각을 어떻게 바꾸는지 놓치기 쉽다. 김윤철의 설치는 보이지 않는 신호를 더 선명한 이미지로 만드는 대신 여러 물질이 서로 반응하도록 전달한다.

따라서 《GYRE》를 보는 일은 한 점의 대표작을 고르는 데서 끝나지 않는다. 신호가 어디에서 시작해 무엇을 거치고, 어느 작품의 리듬을 바꾸는지 따라가야 한다. 작동하지 않는 순간이나 느린 반응도 시스템의 일부다. 작품은 완성된 형상을 오래 보여 주기보다 관계가 잠시 성립했다가 다시 달라지는 시간을 전시한다.

센서와 과학 장비를 쓰는 미디어아트 앞에서 확인할 것은 분명하다. 기술이 현상을 대신 설명하는가, 새로운 감각 관계를 실제로 만드는가. 김윤철의 작업이 강한 이유는 보이지 않는 입자를 볼거리로 과장해서가 아니다. 그 작은 사건이 다른 물질의 움직임을 바꾸고 전시장 전체를 잠시 하나의 감응하는 몸으로 만들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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