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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edia Art Article · 2026.10.27

우연을 쓰는 일과 결정을 열어 두는 일

존 케이지의 우연 작법과 불확정성을 구분해 읽고, 생성형 영상의 시드와 실시간 입력을 통해 작품의 어떤 결정이 언제 누구에게 열려 있는지 살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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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판에 고정된 점들과 여러 투명 판의 겹침으로 달라지는 점들의 배치를 표현한 개념 이미지

표지는 글의 주제를 표현한 AI 생성 개념 이미지입니다. 실제 작품이나 존 케이지의 악보를 재현한 이미지가 아닙니다.

전시장에 두 개의 영상이 있다고 가정해 보자. 둘 다 점들이 낯선 방향으로 움직이고, 관객은 다음 장면을 쉽게 예상할 수 없다. 한쪽은 난수를 사용해 만든 영상을 파일로 저장한 뒤 반복 재생한다. 다른 쪽은 관객이 들어오는 순간의 입력을 받아 점들의 경로를 계산한다. 잠깐 바라본 화면은 비슷해도, 새로운 일이 일어날 수 있는 자리는 서로 다르다.

첫 번째 영상의 우연은 제작 과정에 들어 있었다. 관객 앞에서는 이미 정해진 프레임이 재생된다. 두 번째 영상에서는 실행 중에도 일부 결정이 이루어진다. 그렇다고 두 번째 작품이 더 자유롭거나 더 좋은 예술이라고 바로 판단할 수는 없다. 먼저 물어야 할 것은 무엇이 이미 정해져 있고, 무엇이 아직 열려 있는가다. 우연과 불확정성을 구분하면 변화하는 이미지의 겉모습보다 그 변화가 생기는 조건을 더 자세히 볼 수 있다.

우연으로 정한 결과도 고정될 수 있다

존 케이지는 브루스 더피와의 1987년 인터뷰에서 우연 작법과 불확정성을 구별했다. 그는 주역에서 얻은 수를 작곡에 사용하는 일을 우연 작법으로 설명하면서, 그 방식으로도 고정된 음악을 만들 수 있다고 말했다. 반면 불확정적인 작품은 카메라처럼 여러 결과를 가능하게 하는 구조에 비유했다. 카메라는 사진을 찍게 해 주지만 어떤 사진을 찍을지까지 정하지는 않는다. 두 방법은 함께 쓰일 수 있지만 같은 것은 아니라는 설명이다. 케이지와 더피의 인터뷰

이 구분을 보여 주는 작품이 1951년에 작곡한 피아노 독주곡 《Music of Changes》다. 공식 작품 기록에 따르면 케이지는 주역에 따른 우연 절차를 활용해 빠르기와 셈여림, 소리와 침묵, 지속 시간 등의 요소를 다루었다. 하지만 그렇게 얻은 결과는 악보에 세밀하게 기입되었다. 우연이 작곡의 결정을 이끌었다는 사실과 연주자가 매번 그 결정을 새로 내려야 한다는 말은 다르다. 《Music of Changes》 작품 기록

물론 고정된 악보의 연주에도 차이는 있다. 연주자의 몸과 악기, 공간의 울림이 같을 수는 없다. 여기서 고정되었다는 말은 모든 공연이 물리적으로 똑같은 소리를 낸다는 뜻이 아니다. 작곡 과정의 우연이 결정한 내용을 연주 때 다시 추첨하도록 요구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작품이 무엇을 미리 정했는지를 살피는 것과 실제 경험의 미세한 차이를 부정하는 것은 별개의 일이다.

이 차이는 이미지 제작에서도 익숙하다. 여러 무작위 배치 가운데 하나를 골라 인쇄하면, 우연은 그 한 장의 이미지에 도달하는 방법이 된다. 완성된 인쇄물이 전시장마다 새로운 배치를 생성하는 것은 아니다. 작품이 지닌 우연의 흔적과 작품이 이후에도 결정을 만들어 낼 여지를 나누어 보면, 제작 방식에 대한 설명을 관람 경험 전체로 확대하는 일을 피할 수 있다.

실행하는 사람에게 남겨 둔 결정

1957~1958년의 《Concert for Piano and Orchestra》에서는 다른 구조가 나타난다. 공식 기록은 이 작품이 전체를 한꺼번에 묶는 총보 없이 상세한 개별 파트로 이루어져 있다고 설명한다. 편성은 독주부터 여러 악기의 조합까지 달라질 수 있다. 피아노 파트에는 63쪽에 걸쳐 84종류의 기보 방식이 있고, 연주자는 그 재료의 전부 또는 일부를 선택해 순서를 정할 수 있다. 기록은 이 작품을 만드는 과정에도 우연 절차가 사용되었다고 밝힌다. 《Concert for Piano and Orchestra》 작품 기록

여기서는 만들어질 때의 우연과 실행을 위해 남겨 둔 선택이 함께 존재한다. 상세한 기호가 있다는 사실은 결과가 하나로 닫혔다는 뜻이 아니고, 결과가 열려 있다는 사실은 아무렇게나 해도 된다는 뜻이 아니다. 어떤 재료를 사용할 수 있는지, 그것을 어떻게 읽을지, 어떤 결정을 연주자가 맡는지가 작품의 구체적인 구조를 이룬다.

허더즈필드대학교와 리즈대학교의 공동 연구 프로젝트는 이 작품의 기보와 연주를 분석하고, 연주자들의 접근을 기록했다. 프로젝트가 소개하는 두 앱도 서로 다른 일을 한다. 하나는 피아노 파트의 기보를 바탕으로 자신의 연주용 실현안을 만드는 도구이고, 다른 하나는 개별 독주의 녹음을 조합해 다양한 소리의 버전을 구성하는 도구다. 같은 작품을 다루어도 기호를 해석하는 일과 이미 녹음된 소리를 배치하는 일이 구분된다. 연주 연구 프로젝트 소개

이 사례에서 중요한 것은 선택지가 많다는 숫자보다 선택의 위치다. 공연에 앞서 정해지는 선택도 있고, 실제 연주 속에서 이루어지는 선택도 있다. 작곡가가 하나의 결과를 모두 지정하지 않았다고 해서 남은 판단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그 판단을 연주를 준비하고 실행하는 사람이 이어받는다. 불확정성은 빈칸의 양만으로 설명되기보다, 그 빈칸을 누가 어떤 방식으로 다룰 수 있는지에 따라 구체화된다.

시드를 고정하면 무엇이 반복되는가

컴퓨터가 만드는 변화에도 비슷한 구분을 적용해 볼 수 있다. p5.js의 공식 문서는 randomSeed()에 일정한 값을 주면 random()과 randomGaussian()이 실행할 때마다 같은 결과를 내도록 할 수 있다고 설명한다. 예시로 든 randomSeed(99)의 숫자는 난수 생성의 출발 조건을 정한다. 무작위처럼 보이는 배열도 같은 조건과 호출 순서를 유지하면 다시 얻을 수 있다는 뜻이다. p5.js의 randomSeed 문서

이 기능은 복잡한 생성형 화면에서 특히 유용하다. 어느 한 배치가 마음에 들어 색이나 크기만 비교하고 싶다면, 점들의 위치까지 매번 바뀌는 상황보다 같은 위치를 다시 불러오는 편이 판단하기 쉽다. 변화의 일부를 잠시 고정하면 다른 차이를 더 뚜렷하게 볼 수 있다. 반복 가능성은 실험을 끝내는 장치가 아니라 실험의 질문을 좁히는 수단이 될 수 있다.

다만 시드 하나가 설치 작품의 모든 조건을 고정하지는 않는다. 같은 난수열을 준비했더라도 관객의 움직임이나 외부 입력에 따라 난수를 사용하는 순서가 달라질 수 있다. 시드가 영향을 주지 않는 다른 입력도 있다. 따라서 같은 시작값을 기록했다는 사실만으로 같은 전시 경험이 보장된다고 말할 수는 없다. 무엇을 다시 얻을 수 있는지 설명하려면 난수 생성뿐 아니라 그 값을 사용하는 과정도 살펴야 한다.

가상의 생성형 영상을 세 가지 방식으로 제시해 보자. 첫 번째는 선택한 실행 결과를 녹화해서 보여 준다. 두 번째는 정해 둔 시드와 조건으로 매번 계산을 다시 시작한다. 세 번째는 관객 입력이 이후의 전개에 영향을 주도록 한다. 세 방식은 모두 생성 절차를 활용할 수 있지만, 관객이 만나는 것은 각각 기록된 결과, 재실행되는 과정, 입력에 응답하는 과정이다. 어느 방식인지 밝히는 일은 작품의 가치를 서열화하기보다 관객이 무엇과 관계를 맺는지 정확하게 만드는 일이다.

열어 둔 만큼 구체적으로 정해야 하는 것

케이지의 구분을 모든 디지털 작품에 그대로 적용할 수는 없다. 연주자가 기호를 읽으며 판단하는 일과 프로그램이 난수로 값을 선택하는 일은 서로 다른 행위다. 다만 이 구분은 작품을 설명할 때 어느 단계의 변화를 말하고 있는지 묻게 한다. 제작자의 결정을 우연 절차에 맡겼는지, 실행자의 해석을 위해 여지를 남겼는지, 환경의 변화가 결과에 들어오게 했는지는 각각 따져 볼 수 있다.

예를 들어 소리의 등장 순서를 열어 둔 설치를 상상해 보자. 그 자유가 작품에서 의미를 가지려면 어떤 소리들이 관계를 맺는지, 순서가 바뀌었을 때 무엇이 다르게 들리는지가 드러나야 한다. 소리의 위치까지 바꿀 수 있는지, 겹쳐 울려도 되는지, 한 번 시작하면 어디까지 이어지는지도 작업의 성격에 영향을 준다. 정하지 않은 항목이 많다는 설명만으로는 관객이 경험할 차이를 충분히 말할 수 없다.

관객의 참여도 마찬가지다. 버튼을 누를 때마다 색이 달라지는 작품에서 관객에게 주어진 역할은 무엇인가. 준비된 변화의 시작을 알리는 것인지, 다음 결과의 범위를 바꾸는 것인지, 다른 관객의 선택에 영향을 주는 것인지에 따라 관계가 달라진다. 겉으로 보이는 변화가 커도 관객의 결정은 작을 수 있고, 작은 변화가 이후의 경험을 오래 바꿀 수도 있다. 불확정성을 살피는 일은 이런 차이를 읽는 데 도움이 된다.

작가의 책임 역시 구체적인 형태로 남는다. 무엇을 선택할 수 있는지, 그 선택이 어디에 영향을 미치는지, 결과 가운데 무엇을 작품으로 받아들일지를 정하는 일이다. 우연을 사용했다는 이유만으로 모든 결과가 같은 의미를 얻지는 않는다. 반대로 결과를 일부 고정했다고 해서 예술의 열린 가능성이 모두 사라지는 것도 아니다. 한 장의 고정된 이미지가 해석을 넓힐 수 있고, 끊임없이 변하는 화면이 좁은 반응만 반복할 수도 있다.

그러므로 변화하는 작품 앞에서는 얼마나 많은 결과가 가능한지만 세기보다, 아직 남아 있는 결정의 자리를 따라가 볼 만하다. 그 결정은 제작 중에 끝났는가, 실행을 준비하는 사람에게 넘어갔는가, 지금 이 공간의 사건을 기다리고 있는가. 우연을 작품에 넣는 일과 작품의 일부를 계속 열어 두는 일은 이렇게 다른 질문을 만든다. 그 차이를 분명히 할 때 작가는 자신이 만든 결과뿐 아니라, 이후에 생길 수 있는 경험의 조건까지 더 정확하게 설명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