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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edia Art Article · 2026.08.12

만드는 동안 질문은 바뀐다

Critical Making을 완성품의 비판적 메시지가 아니라 재료와 도구가 초기 가정을 흔들고 다음 결정을 바꾸는 제작 과정으로 읽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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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 사람이 회로와 센서를 함께 시험하는 미디어아트 워크숍

전시팀이 관객의 움직임에 반응하는 설치를 만든다고 해 보자. 가까이 다가가면 센서가 몸을 읽고, 벽면의 빛이 번지는 작품이다. 첫 시연에서는 매끄럽게 작동한다. 그런데 실제 공간에 놓자 어린이는 자주 감지되지 않고, 휠체어를 탄 관객은 센서가 정한 높이 밖에 머문다. 그저 지나가려던 사람까지 뜻하지 않은 반응을 일으킨다.

이때 팀이 센서의 민감도만 높이고 작업을 끝내면 기술적 수정이다. 그러나 가까이 왔다는 사실을 참여 의사로 간주했던 전제가 문제였음을 알아차리고, 명시적인 선택 장치와 비참여 동선을 새로 설계한다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제작 과정에서 만난 물질적 저항이 처음의 질문을 고치고, 그 변화가 다음 버전에 남았기 때문이다.

Critical Making은 바로 이 왕복을 가리킨다. 손으로 무언가를 만들었다는 사실이나 비판적인 주제를 다룬 결과물만을 뜻하지 않는다. 사회와 기술에 관한 질문을 회로, 코드, 센서, 재료, 모형과 부딪쳐 보고, 그 과정에서 드러난 누락과 충돌로 생각을 수정하는 실천이다. 비평은 완성된 작품 뒤에 붙는 해설에서 제작 중 작동하는 방법으로 자리를 옮긴다.

비판은 완성품보다 먼저 시작된다

매트 래토는 2011년 《The Information Society》에 발표한 「Critical Making: Conceptual and Material Studies in Technology and Social Life」에서 이 개념을 체계화했다. 토론토대학교의 소개는 래토의 정의를 바탕으로 Critical Making을 창의적·물리적 탐구와 개념적 탐구의 간극을 잇는 물질적 참여라고 설명한다. 인문학적 통찰과 공학적 실천, 디지털 세계와 물리적 세계를 함께 다루되, 최종 산출물보다 만드는 과정에 무게를 둔다는 것이다.

여기서 눈여겨볼 말은 ‘만들기’보다 ‘연결’이다. 기술 비평은 텍스트와 발표 안에서 정교해질 수 있지만, 실제 장치를 만들기 전에는 부품 가격, 센서 오차, 인터페이스의 기본값, 조립 난도, 접근성, 역할 분담이 부차적인 문제로 밀리기 쉽다. 반대로 제작은 기능 구현과 완성도를 향해 빠르게 달리면서 왜 이 기능이 필요한지, 누구를 정상 사용자로 상정했는지, 실패 비용을 누가 감당하는지 묻지 않을 수 있다. Critical Making은 두 흐름을 같은 작업대 위에 올려놓는다.

Waag의 Critical Making 입장문도 사고와 제작을 서로 떨어진 활동으로 두지 않는 데 주목한다. 이 문서는 예술, 디자인, 기술, 행동주의의 경계를 가로지르는 실천을 논의하면서, 만드는 일과 생각하는 일을 나누는 오래된 구분을 흔든다. 다만 모든 메이커 활동이 저절로 비판적이 되는 것은 아니다. 오픈소스 도구를 사용하거나 납땜을 하고 프로토타입을 전시했다는 사실만으로는 무엇을 새롭게 알게 되었는지 설명할 수 없다.

그렇다고 완성품을 가볍게 보지는 않는다. 결과물은 제작 과정에서 생긴 판단을 보여 주는 강한 증거다. 다만 반짝이는 시제품만 남고 질문이 어떻게 바뀌었는지 사라지면, 그것은 Critical Making의 과정을 입증하기 어렵다. 반대로 거칠고 미완성인 물건도 그 자체로 비판적이지 않다. 서툰 마감과 고장은 접근성 부족이나 준비 부족을 가릴 수 있다. 핵심은 완성도나 미완성의 미학이 아니라, 제작 중 발견이 이해와 결정을 실제로 움직였는가에 있다.

재료가 내놓는 반론

Critical Making에서 재료는 미리 정한 이론을 시각화하는 삽화가 아니다. 재료는 계획을 방해하고, 질문이 놓친 조건을 드러낸다. 카메라는 어두운 피부를 안정적으로 추적하지 못할 수 있고, 음성 인터페이스는 특정 억양을 반복해서 오류로 분류할 수 있다. 실시간 그래픽은 네트워크가 불안정한 장소에서 전혀 다른 리듬을 만들며, 무거운 헤드셋은 제작자가 상상한 몰입보다 피로를 먼저 전달할 수 있다.

그렇다고 기술적 실패를 모두 사회적 통찰로 포장해서는 안 된다. 케이블이 빠졌다면 다시 연결하면 된다. 실패가 비판적 지식이 되려면 관찰에서 해석으로, 해석에서 전제의 수정으로, 수정에서 다음 결정으로 이어져야 한다. 센서가 특정 신체를 놓쳤다는 기록만으로는 부족하다. 어떤 몸을 기준으로 위치와 높이를 정했는지 돌아보고, 그 판단이 센서 배치와 안내, 참여 방식, 운영 절차를 바꿨을 때 비로소 제작과 비평의 왕복이 닫힌다.

생성형 AI를 다루는 작업도 마찬가지다. 여러 프롬프트를 입력해 이미지를 뽑는 활동은 도구 탐색이나 제작 연습일 수 있다. Critical Making에 가까워지려면 모델이 어떤 요청을 쉽게 받아들이고 무엇을 반복해서 지우는지, 선택지가 인터페이스와 정책에 의해 어떻게 좁아지는지, 결과를 고르는 노동과 책임이 누구에게 돌아가는지 조작 가능한 형태로 시험해야 한다. 작은 데이터 묶음, 종이로 만든 분류 인터페이스, 역할 카드, 출력 비교표처럼 단순한 재료도 충분하다. 거대한 모델을 흉내 내기보다 자동화의 한 결정 지점을 손으로 바꿔 보면서 전제가 드러나게 하는 편이 중요하다.

협업 역시 사람 수로 증명되지 않는다. 진행자가 질문과 답을 미리 정하고 참가자가 키트를 조립하기만 한다면 공동 제작은 있어도 공동 탐구는 약하다. 같은 오작동을 기술자는 성능 문제로, 관객은 접근성 문제로, 운영자는 유지보수 문제로 해석할 수 있다. 서로 다른 해석이 기록되고 참가자의 판단이 다음 설계에 반영될 때, 공동 탐구는 실제 지식 생산의 구조를 갖는다.

미디어아트는 과정을 어떻게 남길까

미디어아트 전시에서는 완성된 화면과 장치가 앞에 놓이고, 그것을 가능하게 한 시행착오는 뒤로 숨는다. 그러나 인터랙티브 설치나 네트워크 작품, AI 기반 작업의 의미는 소스 코드와 장비 목록만으로 보존되지 않는다. 어떤 입력을 정상으로 보았는지, 어떤 오류가 작품의 개념을 바꿨는지, 운영자가 무엇을 매일 조정했는지까지 알아야 다음 전시에서 같은 작품을 다시 판단할 수 있다.

그래서 Critical Making의 기록은 보통의 제작 일지보다 한 단계 더 나아가야 한다. 시작할 때 무엇을 문제라고 생각했는지 한 문장으로 남기고, 그 질문을 어떤 재료와 규칙으로 시험했는지 적는다. 계획대로 되지 않은 장면과 참여자 사이의 해석 차이를 보존한 뒤, 처음의 문장이 무엇으로 바뀌었는지 비교한다. 마지막에는 그 변화 때문에 다음 버전에서 실제로 수정한 선택을 확인한다. 사진과 영상은 중요한 자료지만, 그 사이의 판단이 없으면 결과의 모습만 남는다.

예컨대 얼굴 인식 카메라를 이용한 작품에서 정확도 수치만 개선했다고 하자. 이것은 필요한 엔지니어링일 수 있지만, 아직 비판적 제작의 증거는 아니다. 반면 오류가 특정 조명과 피부 톤, 얼굴을 가리는 방식에 집중되어 있음을 확인하고, 얼굴 제공을 참여의 기본 조건에서 제외하거나 인식 실패 자체를 관객에게 보이도록 바꾸었다면 작품의 질문이 달라진다. 이때 남겨야 할 것은 최종 화면만이 아니다. 처음의 가정, 실패 분포, 대안에 관한 토론, 바뀐 인터페이스, 여전히 해결하지 못한 한계가 함께 있어야 한다.

교육 워크숍도 같은 원리로 다시 설계할 수 있다. 센서를 연결하고 화면을 반응시키는 데서 끝내지 않고, 시작 전과 종료 후에 같은 질문에 답하게 하는 것이다. “누가 이 시스템의 정상 사용자로 가정되어 있는가?”, “오류가 나면 누구의 문제로 보이는가?”, “오늘 발견한 사실 때문에 다음 설계에서 무엇을 바꿀 것인가?” 같은 질문은 기술 수업을 도덕 훈계로 만드는 대신, 구현 과정에서 나온 증거를 다시 설계 판단으로 돌려보낸다.

한국의 미디어아트 현장에서도 이 관점은 유용하다. ‘체험형’, ‘실시간’, ‘AI 참여형’이라는 말은 제안서와 홍보문에서 빠르게 장점이 되지만, 센서의 범위나 데이터 처리, 관객의 거부권, 운영자의 개입은 좀처럼 전면에 나타나지 않는다. Critical Making은 이런 조건을 작품 바깥의 실무 문제로 밀어내지 않는다. 제작 과정에서 발견한 편향과 마찰이 형식, 안내, 동의 절차, 운영 예산을 바꾸었는지 묻는다. 비판적 주제를 말하는 작품과 비판적으로 만들어진 과정이 항상 같은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다음 버전이 달라졌는가

Critical Making은 결과물을 평가하는 새 장르명이 아니다. DIY 문화의 다른 이름도 아니고, 고장이 많은 프로토타입을 낭만화하는 말도 아니다. 사회기술적 질문을 손에 잡히는 구성으로 옮기고, 재료와 사람에게서 돌아온 반론으로 처음의 이해를 수정하는 방법이다.

이 관점에서 실패는 흥미로운 에피소드가 아니라 결정의 근거가 되어야 한다. 기록은 성공 사진의 수보다 무엇을 잘못 가정했는지를 보여 주어야 한다. 협업의 깊이는 참가자 수가 아니라 질문과 해석, 수정 권한이 어떻게 나뉘었는지에서 드러난다. 비평도 작품이 완성된 뒤 멋진 문장을 덧붙이는 데 머물지 않고, 다음 버전의 회로, 인터페이스, 동선, 설명, 예산 가운데 어딘가를 실제로 바꿔야 한다.

마지막에 확인할 것은 하나다. 무엇을 만들었는가만 묻지 말고, 만들면서 무엇을 다르게 알게 되었으며 그 때문에 무엇을 바꾸었는지 확인해야 한다. 그 변화가 다음 버전에 남을 때, 제작은 비평의 대상에 그치지 않고 비평이 일어나는 장소가 된다.


참고 자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