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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edia Art Article · 2026.08.13

눈은 언제 이미지를 만지는가

로라 U. 마크스의 촉각적 시각 개념을 따라 이미지가 재현을 넘어 몸의 기억과 감각을 불러내는 순간을 살피고, 미디어아트의 화면을 읽는 기준을 다시 묻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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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투명한 필름과 광물성 표면이 겹쳐 눈으로 만지는 듯한 감각을 만드는 추상 이미지

우리는 대개 이미지를 멀리서 본다. 화면 전체를 한눈에 파악하고, 형상을 알아보며, 장면이 무엇을 뜻하는지 해석한다. 해상도가 높을수록 더 잘 보이고, 윤곽이 선명할수록 정보가 정확하다고 여긴다. 그러나 어떤 이미지는 정반대로 작동한다. 표면이 너무 가까워 형상이 흐려지고, 입자와 얼룩이 먼저 눈에 들어오며, 무엇인지 알아보는 일보다 그 질감을 느끼는 일이 앞선다.

로라 U. 마크스(Laura U. Marks)는 이런 경험을 촉각적 시각(haptic visuality)이라는 말로 설명했다. 이것은 화면을 실제로 만진다는 뜻이 아니다. 눈이 대상을 지배적으로 식별하기보다 표면을 더듬듯 움직이고, 이미지가 냄새·맛·접촉에 관한 신체 기억을 불러내는 시각의 방식이다. 마크스의 논의는 미디어아트의 화면을 메시지의 창이 아니라 몸과 기억이 만나는 표면으로 읽게 한다.

선명한 재현이 놓치는 것

마크스는 2000년에 출간한 《The Skin of the Film》에서 탈식민·초국가적 조건의 상호문화 영화가 체화된 경험을 전달하는 방식을 다뤘다. Duke University Press의 책 소개는 이 책이 약 200편의 상호문화 영화와 비디오를 살피며, 촉각적 시각을 냄새·접촉·맛의 신체 기억을 자극하는 시각성으로 제안한다고 설명한다. 이 개념의 출발점에는 단순한 감각 효과가 아니라 기록된 역사에 남은 공백과 디아스포라의 기억이라는 문제가 있다.

고향의 공기, 음식의 온도, 피부에 닿던 재료의 감각은 카메라로 정면에서 재현한다고 온전히 되살아나지 않는다. 오히려 불완전한 기록, 낡은 영상, 지워진 세부, 가까이 붙은 표면이 기억의 빈자리를 드러낼 수 있다. 촉각적 시각은 그 빈자리를 선명한 정보로 채우기보다 관객이 이미지 표면을 더듬게 한다. 관객은 “이것은 무엇인가”라고 묻는 동시에 “이 표면은 내게 무엇을 떠올리게 하는가”를 느끼게 된다.

따라서 촉각적 시각은 저해상도나 흐린 화면을 아름답게 포장하는 이름이 아니다. 중요한 것은 화질의 좋고 나쁨이 아니라 이미지와 관객 사이의 거리다. 선명한 이미지도 표면과 몸의 기억을 작동시킬 수 있고, 거친 이미지도 익숙한 스타일로 소비되면 촉각적 관계를 만들지 못한다. 판단해야 할 것은 효과의 목록이 아니라 시선이 화면 앞에서 어떤 태도를 취하게 되는가이다.

눈이 표면을 더듬을 때

시각 중심의 관람에서는 대상을 분리하고, 이름 붙이고, 전체 구도를 장악하려는 경향이 강하다. 촉각적 시각에서는 눈이 곧바로 전체를 장악하지 못한다. 시선은 밝고 어두운 부분, 화면의 입자, 재료처럼 보이는 흔적을 천천히 오간다. 알아보는 속도가 늦어지는 만큼 관객 자신의 기억과 감각이 그 틈에 개입한다.

여기서 햅틱 장갑이나 진동 모터를 사용하는 haptics와 구분해야 한다. 촉각적 시각은 물리적 피드백 장치의 유무를 판별하는 용어가 아니다. 시각 이미지가 접촉에 가까운 관계를 어떻게 구성하는지를 묻는 미학적 개념이다. 반대로 실제 진동과 압력을 제공하는 작품도 관객의 몸을 단순한 효과 수신기로 취급한다면 촉각적 관계가 빈약할 수 있다.

마크스는 이 논의를 영화에만 가두지 않았다. 2002년 《Touch: Sensuous Theory and Multisensory Media》에서 예술, 영화, 디지털을 해석하는 더 신체적이고 감각적인 비평을 전개했다. University of Minnesota Press의 소개는 이 책이 비주류 미디어아트의 흐름, 아날로그에서 디지털로의 이동, 다큐멘터리 윤리, 냄새를 둘러싼 사회적 관심을 함께 다룬다고 밝힌다. 여기서 감각은 작품을 이해한 뒤 덧붙이는 개인적 반응이 아니라 작품을 읽는 방법 자체가 된다.

미디어아트의 화면을 다시 평가하기

촉각적 시각은 오늘의 미디어아트를 평가할 때 유용한 기준을 제공한다. 대형 프로젝션과 고해상도 LED가 관객을 압도하더라도, 화면이 보여 주는 모든 것을 즉시 이해하도록 만들면 감각이 개입할 여백은 오히려 좁아질 수 있다. 반대로 작은 화면, 압축된 영상, 불완전한 아카이브가 관객의 기억과 거리 감각을 움직인다면 더 두꺼운 경험이 생긴다. 화면 크기나 화질만으로 몰입을 판단할 수 없는 이유다.

AI 이미지도 같은 질문을 피할 수 없다. 생성 모델은 피부, 직물, 돌, 물, 금속의 질감을 정교하게 합성한다. 하지만 질감 묘사가 풍부하다고 촉각적인 것은 아니다. 표면이 즉시 소비되는 장식인지, 관객이 무엇을 보고 있는지 잠시 멈추고 자신의 감각을 되돌아보게 하는지 구분해야 한다. 촉각적 시각은 “실사처럼 보이는가”보다 “이미지와 어떤 거리를 맺게 하는가”를 묻는다.

접근성 문제에서는 경계가 더 선명해진다. 시각 이미지를 촉각적이라고 부르는 것만으로 실제 촉각 접근이 제공되지는 않는다. 시각장애 관객을 위한 촉각 모형, 음성해설, 진동이나 표면 정보는 별도의 설계와 검증이 필요하다. 촉각적 시각은 시각 중심주의를 흔드는 이론이지만, 그 자체가 대체 감각 경로를 완성하는 기술은 아니다. 미학적 비유와 관객에게 실제로 제공되는 접근 수단을 혼동하지 않아야 한다.

이미지는 피부가 될 수 있는가

마크스의 이론이 남기는 중요한 전환은 이미지를 보는 행위가 언제나 거리를 두는 관찰은 아니라는 점이다. 어떤 이미지는 정보를 전달하기 전에 몸의 기억을 건드리고, 이름을 붙이기 전에 친밀함이나 낯섦을 느끼게 한다. 그 순간 화면은 바깥세계를 재현하는 창에서 관객의 감각이 머무는 피부로 바뀐다.

그래서 미디어아트 앞에서 물어야 할 것은 “얼마나 선명한가”만이 아니다. 이 이미지는 모든 것을 곧바로 보여 주는가, 아니면 시선이 천천히 표면을 더듬을 시간을 주는가. 관객의 몸과 기억은 해석의 방해물로 밀려나는가, 작품을 완성하는 감각의 일부가 되는가. 눈으로 만진다는 말은 비유이지만, 그 비유는 화면과 몸 사이의 거리를 다시 설계하는 구체적인 비평 기준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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