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은 왜 화면 안에서 한 번 더 깨지는가
조앤 조너스의 초기 비디오 퍼포먼스에서 거울, 가면, 화면 오류가 몸과 정체성을 어떻게 분할하는지 살펴보고, 오늘의 실시간 이미지 환경을 읽는 기준을 찾는다.

화면을 가로지르는 검은 띠가 몸을 토막 낸다. 발과 팔, 얼굴은 한 사람의 신체로 이어지지 않고 서로 다른 시간에 도착한 조각처럼 나타난다. 전자 신호의 결함이라면 고쳐야 할 장면이지만, 조앤 조너스(Joan Jonas)의 《Vertical Roll》(1972)에서 이 어긋남은 작품의 중심 장치다. 화면은 몸을 온전히 보여 주지 못한다. 그 대신 영상 기술이 몸을 어떻게 잘라 보고 다시 조립하는지 드러낸다.
조너스의 초기 비디오 작업에는 거울과 모니터, 가면과 의상, 반복되는 몸짓이 함께 등장한다. 이 물건들은 정체성을 설명하는 상징으로만 머물지 않는다. 카메라 앞의 몸과 화면에 나타난 몸 사이에 간격을 만들고, 보는 사람과 보이는 사람의 자리를 계속 뒤바꾼다. 비디오는 현실을 투명하게 옮기는 창이 아니라, 자기 모습을 낯선 타인의 형상으로 되돌려 주는 불안정한 거울이 된다.
거울은 같은 얼굴을 돌려주지 않는다
Electronic Arts Intermix(EAI)의 《Left Side Right Side》 설명에 따르면, 조너스는 이 1972년 작업에서 비디오 이미지와 거울 이미지를 나란히 다룬다. 비디오는 좌우를 뒤집지 않지만 거울은 반전된 모습을 보여 준다. 작가가 왼쪽과 오른쪽을 말하고 가리키는 동안, 관객이 보는 방향과 작가가 경험하는 방향은 일치하지 않는다. 화면은 단순한 기록 장치가 아니라 어느 쪽이 ‘나의 왼쪽’인지 흔드는 공간이 된다.
이 차이는 사소한 광학 퀴즈가 아니다. 우리는 거울 속 얼굴을 자기 모습으로 익혀 왔지만, 카메라는 그 익숙한 얼굴을 다른 방향으로 돌려준다. 조너스는 자신의 이미지를 나누고 화면을 분할하면서 주체와 대상, 관찰자와 피관찰자의 구분이 영상 안에서 얼마나 쉽게 흔들리는지를 보여 준다. 내가 나를 보고 있다고 생각하는 순간에도 장치는 이미 다른 규칙으로 나를 배열하고 있다.
여기서 비디오의 즉시성은 친밀함과 통제를 동시에 만든다. 촬영한 결과를 곧바로 확인할 수 있다는 점은 퍼포머에게 새로운 피드백을 주지만, 그 피드백은 카메라의 프레임과 화면의 방향을 벗어나지 못한다. 몸은 자유롭게 움직이는 것처럼 보이면서도 장치가 허용한 시야 안에서만 자신을 만난다. 조너스의 거울은 자아를 확인하는 도구가 아니라, 자아가 매체의 규칙에 따라 달라지는 현장을 보여 주는 장치다.
오류가 몸의 경계를 다시 그릴 때
《Vertical Roll》은 이 불안정을 기계적 오류의 리듬으로 밀어붙인다. EAI의 작품 설명은 ‘버티컬 롤’을 중단된 전자 신호가 화면을 계속 흘러가게 만드는 현상으로 설명한다. 조너스는 이를 제거하지 않고 반복되는 형식으로 사용했다. 검은 수평 막대가 화면을 통과할 때마다 이미지가 튀고, 몸의 부분들은 서로 붙기 전에 다시 갈라진다.
이 작업에서 오류는 완성도를 떨어뜨리는 흔적이 아니다. 영상 매체가 매끄러운 재현처럼 보이도록 감춰 온 물질적 조건을 앞으로 끌어낸다. 화면의 프레임은 안정된 창이 아니라 전자 신호가 매 순간 다시 세우는 경계다. 신호가 어긋나면 그 경계도 함께 흔들리고, 몸이 화면에 의해 구성된 결과라는 사실이 선명해진다.
EAI는 작품 속 발, 몸통, 팔과 다리가 분리된 조각처럼 나타난다고 설명한다. 조너스는 가면과 의상을 쓴 채 카메라 앞에서 움직이고, 반복되는 롤링 화면은 그 몸을 다시 잘라 낸다. 숟가락이 표면을 때리는 날카로운 소리도 화면의 주기와 맞물린다. 관객은 신체를 하나의 아름다운 형상으로 감상하기보다, 이미지와 소리가 몸을 분절하는 과정에 노출된다.
이때 기술적 오류와 여성 신체의 재현은 따로 떨어진 문제가 아니다. 화면이 몸을 자르는 방식은 누가 프레임을 정하고 어떤 몸짓을 볼거리로 만드는가라는 질문과 연결된다. 조너스는 자신의 몸을 퍼포먼스의 재료로 내놓으면서도, 가면과 롤링, 반복과 분할을 이용해 그것이 하나의 고정된 여성 이미지로 소비되는 일을 방해한다. 보이는 몸은 늘 있지만, 한눈에 소유할 수 있는 완전한 몸은 끝내 주어지지 않는다.
가면은 숨기는 대신 또 다른 자아를 만든다
《Organic Honey's Visual Telepathy》는 조너스가 비디오를 처음 사용한 1972년 동명 퍼포먼스를 바탕으로 한다. 작가는 자신과 가면을 쓴 분신 ‘Organic Honey’를 오간다. 인형처럼 굳은 얼굴, 의상과 머리 장식, 거울에 겹친 이미지가 한 사람의 정체성을 여러 층으로 분리한다. 가면은 진짜 얼굴을 감추는 데 그치지 않고, 카메라 앞에서만 나타나는 또 다른 인물을 만든다.
EAI의 설명은 이 작업을 여성적 몸짓과 전형, 변장과 가장, 의례적 자기 관찰을 탐구한 비선형 퍼포먼스로 읽는다. 어느 얼굴이 진짜인지 가려내는 일은 중요하지 않다. ‘자연스러운 나’와 ‘꾸며진 분신’의 경계 자체가 촬영과 반사, 반복되는 연기를 거치며 만들어진다. 카메라는 이미 존재하는 정체성을 보존하기보다 수행할 수 있는 자아의 수를 늘린다.
《Organic Honey's Vertical Roll》에 관한 EAI의 기록은 거울, 가면, 비디오가 공간적·시간적·심리적 층을 만드는 장치로 쓰였다고 밝힌다. 라이브 퍼포먼스의 극장과 전자 매체의 화면은 서로를 모방하지 않는다. 몸이 전시장에 실제로 존재하는 동시에 영상 속에서 지연되고 잘리며 반복될 때, 관객은 어느 장면을 현재라고 불러야 할지 망설이게 된다.
실시간 이미지가 자연스러워진 뒤에도 남는 질문
오늘날 화면 속 자기 모습은 1970년대의 비디오 장비보다 훨씬 매끈하다. 화상회의 미리보기, 라이브 스트리밍, 휴대전화의 전면 카메라는 촬영되는 동안 자신의 이미지를 확인하게 한다. 얼굴 보정과 배경 분리, 자동 프레이밍은 신호의 흔들림을 숨기고 안정된 자아를 돌려주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조너스의 작업을 지나온 눈에는 그 매끄러움도 하나의 연출로 보인다. 오류가 사라진 것이 아니라 보이지 않는 계산 속으로 이동했을 수 있기 때문이다.
《Vertical Roll》의 검은 띠는 장치의 개입을 노골적으로 드러냈다. 지금의 인터페이스는 그 개입을 거의 느끼지 못하게 만든다. 화면은 얼굴의 밝기를 고르고 시선을 중앙에 맞추며 배경과 몸의 경계를 실시간으로 판단한다. 조너스가 전자 신호의 틈에서 보여 준 질문은 여기에서도 유효하다. 화면은 누구의 몸을 안정적으로 인식하는가. 어떤 몸짓은 자연스럽다고 남기고, 어떤 흔들림은 수정해야 할 잡음으로 지우는가.
이 관점에서 미디어아트가 실시간 카메라나 관객의 얼굴을 사용할 때는 반응 속도만 봐서는 부족하다. 입력된 몸이 어떤 규칙으로 잘리고 반전되며 보정되는지, 관객이 그 규칙을 알아차릴 수 있는지 살펴봐야 한다. 매끄러운 합성이 기술적 성취를 보여 줄 수는 있다. 그러나 매체가 개입한 흔적까지 지우면 관객은 자신의 이미지가 어떻게 만들어졌는지 묻기 어렵다.
조앤 조너스의 초기 작업은 오래된 비디오의 결함을 향수로 소비하게 하지 않는다. 오히려 오류와 거울, 가면을 이용해 이미지가 몸을 구성하는 과정을 노출한다. 화면 속 몸은 현실의 복사본이 아니다. 신호, 프레임, 반사, 연기가 잠시 합의해 만든 형상이다. 좋은 비디오 작업은 그 합의를 완벽하게 숨기는 대신, 우리가 무엇을 보고 있으며 어떤 장치가 그 보임을 가능하게 했는지 되묻게 한다.
직접 읽은 자료
- Electronic Arts Intermix, Joan Jonas.
- Electronic Arts Intermix, 《Left Side Right Side》.
- Electronic Arts Intermix, 《Vertical Roll》.
- Electronic Arts Intermix, 《Organic Honey's Visual Telepathy》.
- Electronic Arts Intermix, 《Organic Honey's Vertical Rol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