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미디어아트의 표준 이미지는 여전히 화면이다. 빛이 나오는 사각형, 그 위에 흐르는 데이터, 그것을 응시하는 관객. 그러나 한국계 작가 Anicka Yi의 전시에 들어서면 그 도식이 무너진다. 가장 먼저 작동하는 매체는 코다. 향, 미생물, 발효, 점성 물질, 공중을 떠다니는 기계 생명체가 관객의 몸을 먼저 장악한다. Yi의 작업은 단순히 새로운 재료를 쓰는 설치가 아니라, 매체를 화면에서 환경으로, 정보에서 감각 인프라로 옮겨 놓는 가장 급진적인 사례 중 하나다.
화면 이후의 매체
Yi의 전시에서 매체는 보여지는 것이 아니라 노출되는 것이다. 2021년 Tate Modern Turbine Hall의 In Love With The World에서 떠다니던 aerobes는 바다 생물과 버섯을 참조한 기계 존재였다. 이들은 발전소였던 거대한 공간에 자율적으로 부유하며, 매주 바뀌는 향의 풍경 속에서 관객과 공기를 공유했다. 관객은 작품을 응시한 것이 아니라, 작품이 호흡하는 대기 안으로 들어갔다. 이 순간 매체는 더 이상 인터페이스가 아니라 서식지가 된다.
Pirelli HangarBicocca의 Metaspore(2022) 역시 같은 방향을 밀어 붙인다. 20여 점의 설치는 자연과 합성, 인간과 비인간, 물질과 비물질의 경계를 흔들며, 향, 박테리아, kombucha leather, animatronic 구조, 광섬유, 영상, 사운드를 하나의 우주론으로 엮는다. 여기서 미디어아트는 도구의 전시가 아니라 감각의 정치를 조직하는 환경 설계가 된다.
향, 박테리아, 분자적 정체성
Yi가 향과 미생물을 다루는 방식은 장식이나 충격 효과가 아니다. 그는 한 인터뷰에서 "매우 pungent한 집"에서 자란 경험을 반복해 언급한다. 누구의 냄새가 깨끗한 것으로 통하는가, 어떤 냄새는 왜 외국적이고 위협적인 것으로 분류되는가. 이런 질문은 추상적이지 않다. 분자 단위에서 작동하는 권력의 문제다.
Washing Away of Wrongs처럼 가전과 향 확산 장치를 결합한 작업, 박테리아 배양과 발효를 통해 만들어진 패널들, 튀긴 꽃과 비누, fish oil pills과 powdered milk가 등장하는 초기작은 모두 같은 질문을 다른 매체로 반복한다. 정체성은 시각적 표상으로만 형성되지 않는다. 친밀성과 혐오, 위생과 오염, 환대와 배제는 코를 통해 먼저 결정된다. Yi에게 향은 메시지가 아니라 사회적 분류 장치 그 자체다.
이 점은 한국계 디아스포라 작가의 위치 문제와 곧장 연결된다. Yi는 한국성을 직접적인 이미지로 재현하지 않는다. 대신 그것을 냄새, 발효, 보이지 않는 미생물의 정치로 우회시킨다. 결과적으로 정체성은 표상이 아니라 감각의 인프라 위에서 다시 협상된다.
비인간 지능과 환경의 예술
최근 작업으로 갈수록 Yi는 미생물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기계와 생명의 경계 자체를 작품의 주제로 끌어올린다. aerobes, Radiolaria, Mineral Fin, Each Branch of Coral Holds Up the Light of the Moon 같은 존재들은 유기체도 기계도 아닌, 그 둘이 서로를 모방하며 함께 진화하는 형상이다. 2025년 Houston의 Karmic Debt에서는 광섬유와 모터, 영상, 사운드, 불교적 시간감각이 결합되며, AI가 효율의 도구가 아니라 비인간 지능을 사유하는 프레임으로 재배치된다.
이때 AI는 생성 모델의 출력물을 전시하는 매체가 아니다. 자율적으로 움직이고, 부유하고, 학습하고, 노화하는 존재들의 운동 그 자체가 AI의 은유가 된다. Yi의 기계들은 인간을 보조하는 도구가 아니라 새로운 생태계의 행위자다. 따라서 그의 작업은 포스트휴먼 담론을 텍스트가 아니라 공기와 빛, 향, 동선을 통해 체험하게 만든다.
2024년 Leeum의 There Exists Another Evolution, But In This One은 이 모든 흐름을 한국 제도권 안에 다시 내려놓은 사건이었다. 해양과 동물성, 금속성, 플로럴, 우마미와 가솔린의 향이 동시에 작동하는 전시장은, Yi의 디아스포라적 감각이 서울이라는 장소에서 다시 한번 재맥락화되는 순간을 만들었다. 한국 미디어아트가 영상과 스크린, 컴퓨터 비전 중심의 도식을 넘어, biomedia와 olfactory media, machine ecology까지 포괄하는 계열로 확장될 수 있다는 것을 가장 분명하게 보여 준 전시였다.
매체 이후의 매체
Yi의 작업이 우리에게 남기는 질문은 단순하다. 더 이상 화면에 머물지 않는 매체를 우리는 어떻게 부를 것인가. 향과 미생물, 떠다니는 기계, 발효하는 표면, 진동하는 구조가 함께 작동하는 환경은 단지 새로운 재료의 목록이 아니다. 그것은 미디어를 정보의 전달 장치에서 감각과 생명의 조건으로 다시 정의하라는 요구다.
Yi가 가르쳐 주는 것은 결국 매체의 재료가 바뀌었다는 사실이 아니라, 매체가 누구의 몸 안에서 작동하는가에 대한 질문이 바뀌었다는 점이다. 우리가 미디어아트에 대해 다음 세대의 어휘를 만들고자 한다면, 그 어휘는 화면이 아니라 호흡에서 시작해야 할지도 모른다.